고용부 ‘고용디딤돌’ 부실 운영
대기업이 교육하고 협력사에서 인턴
정부는 정규직 전환 때 월급 등 지원
올해 9400명 구상 세웠지만
업무정보 불투명해 포기 속출
교육 뒤에 돈 없다며 채용 거부도
정부 “일일이 개입 어렵다” 뒷짐만
채용 후 처우 등 가이드라인 없어
올해 1월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 합격해 한 대기업에서 교육을 받은 후 중소기업 인턴으로 취직한 윤모(25)씨. 그는 지난달 정규직 전환까지 성공했지만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중소기업에 정식 채용될 경우 ‘6개월 간 50만원의 급여를 더 지급한다’는 당초 조건이 윤씨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았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그가 앞서 다른 취업지원 프로그램에서 15만원의 지원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추가 지원을 거절했다. 윤씨는 10일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급여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입사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고용디딤돌은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직무 교육을 받은 뒤 협력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프로그램.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중소기업에는 대기업 교육을 거친 우수 인력을 선발할 기회를 줄 목적으로 정부가 지난해 말 도입했다. 인턴기간 중에는 월 150만원 가량의 장려금이 지원되며, 협력사와 취준생이 서로 원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고 이 경우 최대 300만원의 취업지원금을 얹어준다. 삼성, SK 등 대기업 16곳과 공공기관 17곳이 참여해 올해만 9,400명을 지원한다는 게 고용부의 구상이다.
하지만 ‘대기업-중소기업-취준생’의 3각 상생을 도모하겠다는 정부 취지와 달리 프로그램 운영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협력사의 업무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기업ㆍ기관이 채용공고를 낼 때 업무 내용을 전혀 설명하지 않거나 일부만 제공하는 식이다. 김모(24ㆍ여)씨는 “유통망 관리 노하우를 배우려 판매직에 지원했지만 고객 응대가 주된 업무였다” 며 “어떤 동료는 물류회사에 갔다가 택배 상ㆍ하차 작업만 시켜 하루 만에 일을 그만 뒀다”고 푸념했다.
대기업 교육을 마쳐도 인력, 예산 등을 이유로 협력사에서 인턴 채용을 거부해 시간만 낭비하기도 한다. 박모(27)씨는 “(협력사로부터) 인턴 교육을 담당할 직원이 퇴사했다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방 학생들에게 문턱이 높은 점도 한계다.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에 합격하면 최소 2개월에서 길게는 7개월의 교육 및 인턴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대기업과 협력사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있는 탓에 지방 거주 취준생들은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프로그램 합격 통보를 받은 오모(25ㆍ여)씨는 “경남 지역에 살지만 합격한 협력사가 수원에 있어 교육기간에 머무를 고시원을 수소문하고 있다”면서도 “정규직 전환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혼선이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당장 청년실업률 낮추기에만 급급해 어렵게 만든 일자리의 관리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교육 주체(대기업)와 채용 주체(중소기업)가 별개이다 보니 이해가 다를 수 있는데도, 정부는 지원 자격, 채용 후 처우 등에 관한 세부 가이드라인도 마련하지 않는 등 기업들의 인턴 활용에는 무관심하다. 이렇다 보니 앞서 윤씨 사례처럼 취업을 하고도 뒤늦게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다른 취업 프로그램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장려금을 지원하는 것 외에 정부가 기업 운영에 일일이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인 만큼 정부가 ‘보여주기 식’ 대책 마련에 연연하지 말고 취업 프로그램의 ‘질적 증대’에 힘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일부 중소기업은 인턴을 받을 여력이 없어도 갑인 대기업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며 “부실한 운영에서 오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취준생들에게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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