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자동차의 소형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니로’를 구매한 회사원 박모(38)씨의 만족감은 하늘을 찌른다. 일반 승용차보다 넓은 실내 공간과 ℓ당 20㎞를 넘나드는 실연비를 본 동료들도 하나같이 부러운 눈빛을 보낸다. 박씨는 “비슷한 시기에 하이브리드 세단을 구입한 친구에게 미안할 정도”라며 “배출가스에 대한 부담도 없어 지금까지 탄 차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SUV 통했다
국산 최초의 하이브리드 SUV 니로에 자동차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이전에도 수입 하이브리드 SUV가 판매됐지만 니로는 2,00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과 국내외 SUV를 통틀어 가장 높은 연비(19.5㎞/ℓ)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말 출시된 니로는 한 달 평균 3,000대 가까이 팔리며 하이브리드차 판매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상반기 판매량은 8,366대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5,355대)를 압도했다. 친환경 전용차로 개발돼 니로보다 두 달이나 먼저 출시된 아이오닉에게는 뼈아픈 성적표다.
수입 하이브리드 SUV 판매량도 증가 추세다. 도요타 고급 브랜드 렉서스 ‘NX300h’는 올 상반기 738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364대)보다 배가 늘었다. 도요타가 지난 3월 들여온 ‘RAV4 하이브리드’도 3개월 간 337대가 판매됐다. 두 차는 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7g 이상이라 정부의 하이브리드차 구매 보조금(100만원)을 받지 못하는데도 올해 들어 매월 판매량이 늘고 있다.
1억원이 넘는 포르쉐의 충전식(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PHEV) ‘카이엔 SE 하이브리드’의 판매량도 상반기 1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7대)보다 두 배 늘었다.
이달부터 고객에게 인도되는 볼보자동차의 대형 SUV ‘올 뉴 XC90’도 전체 계약 물량 570대 중 17%가 외부 충전이 가능한 PHEV ‘T8’이다. T8 가격은 무려 1억1,020만~1억3,780만원으로 올 뉴 XC90 중 가장 비싸다.
연비와 넓은 공간을 겸비한 하이브리드 SUV의 인기에 완성차 업체들은 속속 신모델을 내놓고 있다. 닛산이 곧 국내에 출시할 3세대 ‘올 뉴 무라노’도 2.5ℓ 가솔린 엔진에 15㎾(20마력)짜리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SUV다.
지난달 초 부산국제모터쇼에서 BMW가 공개한 PHEV 'X5 x드라이브40e’도 하반기 국내에 상륙 예정이다. 이 차에는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갔다.
콘셉트카 단계지만 기아차가 올해 국내외 모터쇼에서 선보인 ‘텔루라이드’도 3.5ℓ 엔진에 모터를 붙인 PHEV다. 텔루라이드는 기아차의 대형 SUV 모하비 후속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디젤 엔진 대체할 SUV의 ‘새 심장’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파문 전에도 하이브리드 SUV의 가능성은 높게 평가됐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엔진과 배터리로 가동하는 모터의 조합은 SUV와도 궁합이 나쁘지 않다.
엔진은 시동을 걸고 분당회전수(RPM)를 어느 정도 높여야 회전력(토크)이 세진다. 최대 토크도 저속이 아닌 중속에서 나온다. 반면 모터는 가동하자마자 최대 토크를 발휘하고, RPM이 높아지면 토크가 감소한다. 저속에서 토크가 높은 모터를 같이 쓰면 차체가 무거운 SUV 구동에 유리하다. 게다가 고배기량 디젤 엔진의 거친 소음에서도 해방된다.
하이브리드 방식은 배기량이 적은 가솔린 엔진을 써도 SUV의 필수조건인 힘이 부족하지 않다. 인피니티의 7인승 SUV ‘QX60 하이브리드’는 2.5ℓ 가솔린 엔진과 모터로 253마력을 발휘한다. 3.5ℓ 엔진을 얹은 ‘QX60’(265마력) 못지 않은 출력이다. 볼보 XC90도 하이브리드 모델인 T8이 디젤차인 ‘D5’보다 출력과 토크가 월등히 높다.
카이엔 SE 하이브리드는 최고 시속 243㎞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5.9초밖에 걸리지 않는 주행 성능을 자랑한다.
SUV의 매력인 사륜구동도 거뜬하다. 도요타는 후륜에 모터를 한 개 더 달아 평상시 전륜구동을 하고 미끄러운 길이나 곡선 구간에서 사륜구동으로 바뀌는 가변식 ‘E-포(four)’ 시스템을 RAV4 하이브리드와 NX300h에 탑재했다. XC90 T8도 후륜에 모터를 추가한 사륜구동이다.
가솔린 엔진뿐 아니라 디젤 하이브리드 SUV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하이브리드 SUV에 장애물이 없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3.0ℓ 디젤 엔진에 35㎾ 모터가 합쳐진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하이브리드’가 지난해부터 판매 중이다. 두 차 모두 4.4ℓ 터보 디젤 엔진에 버금가는 340마력에 최대 토크 71.4㎏ㆍm를 발휘한다.
이러한 이유로 하이브리드 SUV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박재용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장은 “하이브리드는 SUV의 디젤 엔진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업체 별로 연비나 주행성능 등 추구하는 방향에는 다소 차이가 있어도 하이브리드 SUV로의 변화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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