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과장, 이번 납품 업체 리스트 다시 검토해봐.”(윤부삼 부장)
“그건 처장님 결재만 남았는데요.”(백록담 과장)
“괜찮은 업체가 누락됐어. 자네도 알지? 최충선 사장”(윤 부장)
“RF정밀이요? 거긴 작년 품질 검사에서 문제가….”(백 과장)
“너무 빡빡하게 물건만 보지 말고 사람을 좀 보라고. 최 사장이 작년에 이래저래 고생 많이 했어. 내가 직접 만나서 확인했으니까 자넨 도장이나 찍어서 올려 보내.”(윤 부장)
연극 ‘굿 메이커스’의 한 장면이다. 연극의 등장 인물들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들이다. 윤 부장은 원전 부품 납품 비리 후 몰아친 인사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처세의 달인이고, 윤 부장의 학교 후배인 백 과장은 회사 내에서 ‘청렴과 정직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둘의 갈등 속에 등장하는 원칙주의자 한중신 팀장은 “관행은 빠르고 편리하고 달콤하죠. 그래서 조직이 썩습니다. 상사가 그렇게 하면 부하직원도 그렇게 하죠. 상사의 생각은 부하직원에게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이니까요”라면서 일침을 날린다. 청렴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수원 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굿 메이커스’는 지난 5월부터 한수원 사업소를 돌며 공연되고 있다.
2013년 원전 부품 납품 비리 사건 등으로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은 한수원은 지난해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틀에 박힌 전달ㆍ주입식 윤리교육에서 벗어나 연극을 통한 감성윤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한수원 직원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의 극복 과정을 그린 이 연극은 교육 몰입도가 높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연극을 통한 감성 교육 외에 한수원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공직 생애주기별 윤리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신규 임용자는 물론 고위직원까지 공직자의 기본자세, 고위직 청렴 리더십 등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직무 특성상 직원들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특히 한수원의 자체 교육기관인 인재개발원에서 시행하는 모든 직무교육 과정은 청렴을 생활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수원은 최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윤리경영 슬로건을 공모, ‘원전, 청렴을 품어 안전을 낳다’를 최우수상으로 선정했다. 또 윤리경영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등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한 윤리의식 제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밖에도 청렴윤리의 날을 지정해 ‘청렴윤리 자가진단’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사내 그룹웨어 로그인 때 윤리 메시지와 청렴 관련 명언을 게시해 직원들이 늘 ‘청렴’을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또 행동강령 퀴즈 등 직원들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생활 속 윤리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수원은 반드시 가져야 할 가치관과 신념인 5대 핵심 가치를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기술, 존중, 안전, 사회적 책임, 그리고 정도(正道)다. 정도는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원칙과 기준에 따라 모든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한수원은 이를 위해 원전 부품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 원전 부품 종합 이력 등을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원전 기자재의 전체 생애주기를 추적할 수 있는 최신 정보통신기술(IT) 시스템으로 원전 부품 납품ㆍ관리의 투명성을 높였다.
한수원은 비리 발생을 사전에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2직급 이상 퇴직자에 대해 퇴직일로부터 3년 간 협력회사로의 취업을 금지하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이를 위반한 협력사에 대해서는 입찰 때 신인도 감점은 물론 공급자등록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2직급 이상 직원들은 본인과 배우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친족이 공급업체에 근무할 경우엔 관련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아울러 10만원 미만의 금품ㆍ향응수수 때도 부당행위가 수반될 경우 해임이 가능하도록 징계양정기준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수원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2등급을 받았다. 부패방지시책 평가에서는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 평가에서 한수원이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 5등급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청렴도가 크게 향상된 것이다. 또 감사원으로부터 자체 감사 우수기관에 선정되는 등 한수원의 청렴ㆍ윤리 정책의 성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한수원의 명성 재건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공감하는 청렴ㆍ윤리경영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임직원들의 청렴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투명하고 깨끗한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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