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여제로 한 시절 세계를 주름잡았던 박세리(39ㆍ하나금융그룹)가 18년간 정들었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생활을 마무리하는 경기를 마치고 후배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축하해주기 위해 나온 전성기 시절 라이벌 카리 웹(42ㆍ호주)의 품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을 흘렸다. 박세리와 동반 라운드를 한 ‘세리 키즈’ 최나연(29ㆍSK텔레콤), 유소연(26ㆍ하나금융그룹)도 자신들의 우상이 흘린 눈물에 함께 울었다.
박세리는 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 골프대회 2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치고 컷 탈락했다. US여자오픈은 1998년 박세리가 워터헤저드에서의 ‘맨발 투혼’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IMF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대회다. 올해 US여자오픈을 앞두고 “이 대회가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마지막”이라고 밝혔던 박세리는 이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열리는 LPGA투어와 작별했다. 박세리는 “지금 내 마음 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솟구친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웹은 한 때 나의 우상이기도 했고 좋은 친구였다. 웹의 인사를 받고 떠나게 돼 정말 의미가 크다”고 눈물지었다.
박세리는 미국골프협회(USGA)의 초청을 받아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지난 해 어깨 부상 등으로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던 그는 자력 출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박세리는 “US여자오픈은 내 골프 인생의 성공이 시작된 곳이다. 그 어떤 대회보다 특별한 대회에서 미국 본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를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올해 10월 국내에서 열리는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등에 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사실상 은퇴 수순에 접어들었다.
한국 골프는 ‘박세리 이전’과 ‘박세리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그가 한국 골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어떤 이들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전 유성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박세리는 대전 갈마중에 다니던 1992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라일 앤드 스콧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K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둔 박세리는 1996년 프로로 전향, 8승을 추가하는 등 KLPGA 투어에서 총 14승을 기록했다.
일찌감치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1998년 미국으로 진출한 박세리는 첫해부터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98년 5월 메이저 대회였던 LPGA 챔피언십, 7월에는 US여자오픈을 연달아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해 LPGA 투어 신인상은 단역 박세리 몫이었다.
박세리는 메이저 5승을 포함해 LPGA투어 25승을 거둬 한국인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2007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박세리는 20일쯤 귀국해 리우 올림픽 한국 대표팀 코치를 맡아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는 “18년간의 투어 생활은 길고 충분한 시간이었다”며 “많이 그리울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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