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은 올해 두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피어라 돼지’와 ‘죽음의 자서전’입니다. 두 시집을 대속(代贖)의 앓음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고통을 모두 모으고 고통의 만찬을 준비하고 그것을 꼭꼭 씹어 삼킵니다. 80년대를 언어로 지나온 시인이기에 가능한 시편입니다.
이 시가 들어 있는 ‘죽음의 자서전’은, 죽은 이의 머리맡에서 읽어주면 영원히 자유로워진다는 ‘티벳 사자의 서’처럼, ‘서울 사자의 서’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칠칠은 사십구라고 무심하게 외워지는 것처럼,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아무 것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시인의 말)고 적고 있습니다. 시인은 증언자입니다. 덧붙이지 않는, 덧붙일 수 없는 것이 시와 죽음이라는 것.
죽음이 쓴 자서전. 죽음을 목격한 이가 죽은 이의 죽음에게 입을 빌려주는 시편이며, 죽은 내가 죽을 내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답장할 수 없는 곳, 어제도 내일도 없는 곳, 한 번도 어둠을 맞아본 적 없는 그곳에서 온 편지입니다.
하루에서 마흔 아흐레까지,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시인의 말)고 했습니다. 찬란한 첫 빛, 그것을 꺼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간 시의 언어가 있습니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귀로 그 소리를 들어보세요. 출근에서 시작한 하루가 닷새가 되었고 지금은 백야입니다. 밝고 밝은 빛, 둥글고 큰 것에 이르렀습니다.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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