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과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여성 수장의 등장을 목전에 두면서 여성 정치인들의 위기해결 능력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7일(현지시간)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과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부 차관이 보수당 대표 경선 2차 투표에서 1,2위를 차지하며 차기 총리 후보로 확정됐다. 오는 9월 이후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브렉시트) 혼란을 수습할 차기 총리가 여성으로 확실시됨에 따라 영국은 마가렛 대처 이후 26년 만에 여성 총리를 맞게 됐다. 영국에서는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등의 여성이 이미 영연방 각국을 통치하고 있어 남성 지도자들이 소수가 되는 분위기다.
영국 총리 경선을 계기로 미국과 독일 등 세계 주요국의 수장이 여성으로 채워지는 시나리오도 점쳐지고 있다. 난민 위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등 풍전등화의 유럽을 이끌어 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6년간 미국 포브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돼 왔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지구촌 여풍은 ‘세계정부’ 유엔도 조용히 지나치지 않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차기 총장 선출이 두세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 후보 12명 중 절반이 여성인 상황이다. 이에 70년 유엔 역사상 최초로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최근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는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으로, 코스타리카 정부가 7일 공식 추천 사실을 발표했다. 피게레스는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정’ 합의를 이끌면서 유력한 차기 총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전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위기해결 능력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5일 ‘남성들이 만든 정치적 잿더미에서 여성들이 떠오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치적 혼란이나 경제 위기 시 여성 지도자에게 의지해 난국을 돌파하려는 정서가 커진다고 풀이했다. 영국 상원의 앤 젠킨 케닝턴도 “여성 지도자가 등장하면 국민들이 ‘유모’를 떠올리며 안도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혼란기에 협력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상을 옹호했다.
여성 지도자들의 위기 타개 능력의 기저에는 냉철한 현실 판단력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 주간 타임은 8일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최대 강점은 현실적인 지도자로서 이미지라며 “역대 여성 지도자들은 거대하고 전면적인 개혁보다는 실용주의적 면모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즉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같이 남성 지도자들의 극단적 결단으로 위기가 찾아올 경우 반대로 점진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여성 정치인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유권자에게 각인된 ‘현실적 여성’ 이미지가 또다른 편견으로 작용해 이들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타임은 클린턴 후보의 대학 등록금 무상지원 공약을 언급하며 “버니 샌더스나 도널드 트럼프가 내놓을 만한 ‘현혹시키는 제안’으로 그의 실용주의 정체성을 손상시켰다”며 “소리치는 것은 남성에겐 고무적인 수단이지만 여성 후보의 경우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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