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조작 통해 세금 부당 환급

롯데케미칼이 신동빈(61)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을 때 정부를 상대로 270억원대의 소송 사기(본보 6월 21일자 1면)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 및 황각규(61)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신 회장으로 이어지는 롯데그룹 수뇌부들의 지시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그룹 수사팀은 허위 기재된 장부를 이용해 정부로부터 270억원 상당의 세금을 환급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로 롯데케미칼 전 재무이사 김모(54)씨를 구속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04년 석유화학회사 고합의 자회사인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한 롯데케미칼은 1,512억원의 고정자산이 허위로 기재된 케이피케미칼 장부를 이용해 2008년 국세청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지난해까지 법인세 220억원 및 가산세 20억원, 주민세 30억원 등 270억원 상당을 환급 받았다. 하지만 1995년 회계사기를 저지른 고합에게 해당 고정자산은 존재하지 않았고,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허위 작성된 장부를 근거로 세금을 돌려 받았다고 판단했다. 기계설비 등 고정자산이 존재할 경우 매년 발생하는 감가상각 비용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납부할 세금을 줄여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검찰 관계자는 “굴지의 대기업이 단순 조세포탈이나 횡령ㆍ배임을 저지른 경우는 있었지만 국가를 적극적으로 속여서 자금을 편취한 경우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케이피케미칼에서부터 재무업무를 담당했던 김씨는 “경영수치 및 이익률 개선과 관련해 실적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롯데케미칼의 소송사기에 적극 가담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김씨는 그러나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범행을 주도하지는 않았다고 밝혀 윗선 지시 여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 회장은 2004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현재까지 줄곧 롯데케미칼 회장직을 맡아왔다. 검찰은 케이피케미칼 인수 및 국가 상대 사기소송 등 주요 의사결정을 구속된 김씨가 독자적으로 내리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윗선 지시여부를 파악해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롯데케미칼이 부당하게 환급 받은 돈도 반드시 추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최근 출국금지 하는 등 총수 일가를 겨냥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수사팀이 이들 부자를 압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달 3일 귀국한 신동빈 회장은 변호인단 및 측근 인사들과 접촉하며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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