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3인조’ 진범 자백했는데
슈퍼 할머니 살해범으로 몰려
인근 마을 살던 청년 3명 옥살이
경찰ㆍ검찰 강압 부실 수사 논란
옥살이 청년들 “형사들 감옥 가야”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에 대해 법원이 8일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별도의 진범이 범행을 자백했음에도 억울한 옥살이까지 살았던 최모(37)씨 등 이른바 ‘삼례 3인조’가 17년 만에 누명을 풀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부장 장찬)는 이날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최씨 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며 “너무 늦게 재심 결정이 이뤄져 안타깝다”고 위로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해 이들의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법원 재심결정이후 최씨 등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심결정은 예상된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재심결정은 기쁘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도 기쁘지만은 않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또 “당시에도 증인들과 범인들이 나왔지만, 경찰은 우리를 협박하고 수사를 조작해 우리를 감옥가게 했다”며 “당시 형사들도 우리처럼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주인 할머니 유모(당시 76세)씨의 입을 청테이프로 막아 질식해 숨지게 한 뒤 현금과 패물을 훔쳐 도주한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9일 만에 경찰은 인근 마을에 살던 청년 3명을 용의자로 지목했고, 절도 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 이들은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청년들이었고, 지적장애인도 있었다. 이들은 재판 회부 7개월 만에 각각 징역 3년에서 6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일단락된 듯했던 이 사건은 같은 해 11월 부산지검이 진범으로 지목된 ‘부산 3인조’를 검거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부산지검은 용의자들의 자백을 받아낸 뒤 전주지검으로 사건을 넘겼다.
당시 최씨도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전주지검은 이듬해 3월 부산 3인조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들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9년 3월 만료됐고 결국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종료됐다.
사건발생 16년이 흐른 지난해 3월 최씨 등은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다”며“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고 전주지법에 재심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여러 차례 공판을 진행했고 공판과정에서 진범이라고 밝힌 남성의 양심선언도 나왔다.
지난 4월 재심청구 두번째 심문에 증인으로 나선 부산3인조 중 이모씨는 “나와 지인 2명 등 3명이 진범”이라며“당시 익산까지 왔다가 지인들과 함께 삼례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당시 눈이 내렸던 상황과 범행도구, 사건현장 내부구조, 범행시 청테이프 사용, 피해자 상대로 인공호흡을 했던 사실 등을 정확히 설명했다. 이씨는 또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당시 수사관은 내가 범행을 했다고 해도 ‘범행장소가 다를 수 있다’는 등 무시했다”며 “당시 제대로 처벌 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씨는 지난 1월 충남 부여군의 피해자 유모씨의 묘소를 찾아 무릎을 끊고 사죄했다.
억울한 누명으로 복역을 했다고 주장한 당시 피고인 3명과 해당 사건의 피해자, 진범이라고 고백한 남성 모두가 한 목소리로 17년 전 수사는 잘못됐다고 주장하면서 경찰과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은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검찰은 법원의 결정문을 살펴본 뒤 항고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사건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진범이 고백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항고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경직된 조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전주=박경우 기자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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