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세계 최강대국의 꿈을 키워온 중국이 첫 번째 시련에 부닥쳤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그것이다. 오는 12일에 있을 판결의 윤곽은 이미 드러났다. 영유권 분쟁 자체에 대해선 PCA가 판단을 유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워낙 민감한 문제인데다 유엔해양법협약상 PCA가 영유권이나 해양경계 획정을 결정할 권한이 규정돼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이 난사(南沙)군도 내 7개 섬에 조성한 인공섬의 경우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나같이 만조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해양법상 섬이 아닌 바위로 규정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자에 대한 판단은 사실상 전자를 규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중국이 구단선(九段線)을 그어놓고 남중국해 전체 수역의 80%에 대해 ‘본질적인 주권’을 갖는다고 강변하는 현실적인 근거의 핵심이 바로 이들 인공섬이기 때문이다.
PCA 판결이 예상대로 나올 경우 구속력ㆍ강제력은 없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국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중국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변국들을 더욱 옥죌 가능성이 높다. 최근 중국 군 당국은 공개적으로 남중국해에도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어떤 식으로든 미중 간 긴장ㆍ충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문제는 PCA 판결의 후폭풍이 한국의 외교ㆍ안보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우선 이어도가 분쟁지역화할 개연성이 높다.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곳이라지만, 중국은 이미 2013년 동중국해 일원에 일방적으로 ADIZ를 선포하면서 이어도를 포함시켰다. 당시 중국은 이어도가 자국 본토로부터 이어진 대륙붕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PCA 판결이 자국 영토주권의 본질적인 근거를 침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중국은 동중국해까지 분쟁지역화하며 역내 긴장의 파고를 높일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우리 역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치르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건 중국에게 있어 북한의 전략적 자산가치가 더욱 높아질 개연성이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ㆍ호주를 핵심 축으로 해서 필리핀ㆍ한국을 하위파트너로 삼고, 여기에 베트남ㆍ인도까지 포괄하는 범태평양 안보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자신을 포위하고 있다고 여긴다. 중국이 러시아와 ‘신밀월’ 관계를 강화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교류ㆍ협력을 확대하는 건 이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더욱이 해양 진출의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상 ‘북한 붕괴론’에 기반해 남북관계를 단절시켜 놓은 상태에서 미일중러와 함께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시키겠다는 정책 기조의 파탄을 의미한다. 미국과 갈등ㆍ충돌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중관계를 전략적으로 배치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 정부의 바람과 달리 북한을 옥죄는 쪽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벌써부터 중국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동결 단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PCA 판결을 목전에 둔 8일 한미 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을 공식화했다. 우리 정부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그러니 누가 봐도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조한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동북아 군비 경쟁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등에 대해선 고민이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자국 포위전략의 핵심을 군사기지 건설과 첨단 전략무기 배치로 보고 있는 중국이 우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지는 자명하다.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두번 세번 강조하는 우리 정부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