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을 들고 병실에 난입한 사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든다. 벽으로 사내를 밀쳐 오른손에 든 칼을 떨어뜨리고, 그를 제압하는 모습이 당차다. 이번엔 응급실. 주먹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5~6명의 조직폭력배를 무릎 꿇리는 데까지 3분이 채 안 걸렸다. 영화 ‘비트’에서 17대 1로 싸워 이겼다며 입 방정을 떤 임창정이 아니다. 배우 박신혜(26)가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흰 의사 가운을 입고 선보인 액션 연기다. 기존 의학드라마에선 보지 못했던 당찬 여의사의 등장이다.
격투기가 취미인 여의사의 등장
제작진에 따르면 박신혜는 지난 5일 방송된 6회까지 모든 액션 연기를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키 184cm인 극중 상대 남자 배우인 김래원의 머리를 넘긴 하이킥은 기본. 몸을 빠르게 돌려 팔꿈치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는, 실전 격투기 기술인 ‘백스핀 엘보우’도 거뜬하게 소화한다. 박신혜의 소속사인 솔트엔터테인먼트의 김영롱 실장은 8일 “박신혜가 촬영 전부터 액션 학원에 다니며 고난도 격투기 기술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박신혜 지인들에 따르면 박신혜는 운동신경이 매우 좋고, 평소 운동에 관심도 많다. 여배우론 드물게 포켓볼이 아닌 4구(100)도 치고, 펜싱까지 한다. “책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기 보단 몸으로 배우는 스타일”이라고 박신혜는 말한다.
박신혜는 여배우 중에서도 몸을 잘 쓰는 배우로 통한다. 박신혜는 지난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기 전 가수 이승환이 운영하는 드림팩토리에서 댄스 가수 데뷔를 준비했을 정도로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상속자들’(2013) 등 기존 작품에서 밝고 명랑한 캔디 역을 주로 연기했던 박신혜는 ‘닥터스’에서 걸크러쉬(여성들에게 호감을 사거나 동경의 대상인 여성을 일컫는 말) 캐릭터인 신경외과 의사 유혜정 역을 맡아 드라마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닥터스’ 속 유혜정은 남성들에 “난 내가 보호한다”며 도움을 거절하고, 진취적이며 때론 반항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
‘옥중화’ 진세연, ’또 오해영’ 예지원... 여성들의 공포 반작용
드라마 속 박신혜의 활동적인 면모는 걸크러쉬가 주류로 떠오른 여의도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MBC 주말 사극 ‘옥중화’에선 배우 진세연이 주인공인 옥녀 역을 맡아 뛰어난 검술로 사내들을 휘어잡는 당찬 조선 여성으로 나온다. 최근 화제 속에 끝난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배우 예지원은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언급에 할 말은 다 하는 화끈한 외식사업본부 이사 박수경을 연기해 통쾌함을 선사했다. 태권도 1단이기도 한 예지원은 극중 화끈한 발차기로 철부지 연인 이진상(김지석)을 주눅들게 한다.
가요계(‘넌 이즈 뭔들’의 걸그룹 마마무 등)와 예능프로그램(‘님과 함께’의 ‘가모장’ 김숙 등)에 이어 드라마에서 불고 있는 걸크러쉬 열풍은 사회 현상 속에서 해석 가능하다. 최근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 등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혐오 대상으로 치부되는 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여성 시청자들의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에서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남성적 억압에 억눌리지 않는 드라마 속 당찬 여성 캐릭터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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