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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브렉시트, 탈출의 미학

입력
2016.07.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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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영국의 국민투표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EU에 남을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 상반되는 결과였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영국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그 여파는 어떠할지를 분석한 뉴스들이 국내외로 홍수를 이루었다. 이민자, EU 분담금, 일자리와 복지 등이 탈퇴의 이유로 자주 거론된다. 나는 영국 전문가가 아니어서 어떤 이유로 브렉시트라는 결과가 나왔는지 잘 모른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국민투표 뒤 영국인들이 구글에서 검색한 내용이었다. AP통신이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외신에 따르면 브렉시트 찬성 결과가 나온 지난 6월 24일 “EU가 뭔가요”라는 문장이 가장 많이 검색됐으며 “EU를 탈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의 검색량은 3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만약 투표 전에 영국 유권자들이 검색을 많이 해 봤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이런 부질없는 가정을 해 보기도 하지만, EU 탈퇴가 확정된 뒤에야 영국인들이 EU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투표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모를 일이다.) 유명한 책 제목을 빌어 표현하자면 EU의 실체는 ‘탈출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던 셈이다.

지구 표면에 붙어사는 우리는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 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렵다. 논란을 종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지구를 탈출하면 비로소 지구가 보인다.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바둑 격언도 있다. 바둑판 밖에서 보면 여덟 집이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 수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탈출의 미학’은 물리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은 전기전하를 가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보다 대략 10^40배 정도 더 작다. 중력이 전자기력에 비해 왜 이렇게 작은가 하는 문제는 오랜 세월 물리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아직도 이 문제는 미해결 난제이다. 1990년대 말에는 몇몇 과학자들이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 4차원 이상이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내용이다. 원래 중력은 전자기력만큼이나 강력하지만 중력이 우리가 사는 3차원을 넘어 덧차원(extra dimension)으로 빠져나간다면 3차원의 중력은 충분히 약해질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두 논문의 인용횟수가 현재 5,800여회, 7,100여회에 이른다. 물론 아직까지 덧차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검증하지는 못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 설비인 유럽의 대형강입자충돌기는 실제로 덧차원의 신호를 탐색하고 있다.

갇혀 있는 틀을 벗어나면 전에 없던 새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지구를 직접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3차원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도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구 표면에 앉아서도 둥근 지구를 알아냈고 3차원 공간 속에서도 4차원 이상을 내다볼 수 있었다. 해 보지 않고도 상상하는 것, 실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과학자의 일이다.

영국 유권자들이 국민투표 이전에 브렉시트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면, 그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혼란을 훨씬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한반도, 그것도 절반 아래에서만 갇혀 살아온 우리에게도 남의 일은 아니다. 냉전의 마지막 굴레 속에 아직도 묶여 있는 우리도 이제는 ‘그 너머’를 생각해 봐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탈냉전의 ‘코렉시트(KorExit)’를 미리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신한 일본과 G2로 우뚝 선 중국만 보더라도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변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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