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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오빠들에 빠졌다!” 빠순이의 인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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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오빠들에 빠졌다!” 빠순이의 인권찾기

입력
2016.07.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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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무한도전을 통해 컴백해 '노랭이(젝스키스의 팬덤을 칭하는 말)'들을 결집시킨 젝스키스의 과거 활동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MBC 무한도전을 통해 컴백해 '노랭이(젝스키스의 팬덤을 칭하는 말)'들을 결집시킨 젝스키스의 과거 활동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강준만ㆍ강지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발행ㆍ268쪽ㆍ1만3,000원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또 다른 존재, 그대 이름은 일명 ‘빠순이’ “새우젓을 먹을 때 일일이 모든 새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듯이, 오빠가 “수많은 팬들을 모두 한 번씩 바라보기는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빠순이들은 알고 있다. ‘빠밍아웃(빠순이임을 커밍아웃하는 것)’ 하고 ‘빠질(빠순이질)’을 할 때 내리 꽂히는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 또한 그들은 안다. 그러나 빠순이들의 사랑에는 지침이 없다. 그들은 ‘일반인 코스프레’로 자신을 위장하고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존재로 거친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다.

빠순이 딸을 뒀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그의 제자이자 동방신기 빠순이 출신 강지원은 “빠순이들이 누려 마땅한 인권이 회복되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되찾을’ 인권이 그들에게는 없으니 ‘회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맞다. 빠순이 역사상 인권을 누렸던 적은 단 한번도 없으니 말이다.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는 ‘빠순이 예찬론자’인 두 저자의 빠순이 인권선언문이나 다름없다. 빠순이의 정상화를 위함이 아니고, 잘하는 일이라 칭찬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말이다. 순수한 관계를 지향하는 로맨티스트이자 대중문화의 젖줄, 치열하게 진화 중인 빠순이를 위해 두 저자는 외친다. “빠순이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찐득한 사람이었느냐.”

‘대중문화사전’(2009) 에 의하면 빠순이는 ‘오빠 순이’의 줄임말, 즉 ‘오빠에 빠진 어린 여자 아이’를 뜻하며, 이전 세대인 ‘오빠부대’보다 더 어려졌고 더 맹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접미사 ‘~순이’는 조롱과 비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빠순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하기보다 빠순이의 정의를 ‘열성 팬’ 정도로 엷게 사용하자고 말한다. 부정의 대상을 부정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는 “딱지를 수긍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까 빠순이라는 단어에 과민 반응 하며 금지령을 내리기보다 “그래, 나 빠순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라고 묻는 게 빠순이 살리기에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두 저자는 빠순이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 옹호한다. 오빠가 좋아 뭉친 빠순이는 ‘취향 공동체’다. 여기에 피 튀기는 무한경쟁 논리는 없다. 빠순이는 또한 ‘소통 공동체’다. 처음엔 오빠 때문이었지만 나중엔 오빠가 없어도 모인다. “중요한 것은 스타가 아니라 모여 있는 우리들”이라는 말이다. 빠순이는 자본의 노예가 아니요, 오히려 지나친 상업화에 맞서는 투사가 되기도 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도,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 고발도 ‘공공성’을 내세운 빠순이의 저항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빠순이는 사회 참여적이다. 촛불 집회 현장에도 모이고, 생일이나 데뷔일 등 오빠의 기념일에 맞춰 ‘조공’ 대신 ‘기부’를 한다. 빠순이의 시간과 열정과 돈은 대중문화산업의 원동력이다.

빠순이 인권 찾기는 여성 혐오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제시한다. “빠순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소수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른바 ‘혐오 발언’의 효과”를 내기 마련. 저자는 이진송 칼럼니스트의 말을 빌어 대답한다. 빠순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빠순이 혐오를 저지하고 연대하는 것에, 그리고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에. “‘오빠는 내가 지킨다’는 신념이 오빠 이외의 다른 지킬만한 것들을 위해서도 발휘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저자는 거룩한 인권선언문을 마친다. “빠순이는 물론 빠순이를 아끼는 모든 이들이여! 이제는 인내하지 말자.”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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