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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 미만 ‘가성비’ 갑 와인은 누구

입력
2016.07.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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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에서 추린 인기 와인. 모두 1만원 미만이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에서 추린 인기 와인. 모두 1만원 미만이다.

인생의 모든 와인을 크룩(Krug, 돔 페리뇽과 함께 최고급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샴페인)으로 시작해 샤토 디켐(Chateau d'yquem, 프랑스 소테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귀부(貴腐) 와인)으로 마칠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쉽고 간단할까? 하지만 인생은 대체로 복잡하고, 문제는 언제나 가격이다. 누구나 다 아는 좋은 와인에 붙은 가격표는 어림짐작보다도 훨씬 더 가혹하다. 1784년 빈티지의 샤토 디켐은 5만5,800달러(6,500만원)에 거래됐다. 화이트와인 경매가 최고 기록이다. 6,500만원은커녕 6,500원 쓰기도 무서운 세상이거늘.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마트 와인 코너에서, 혹은 세일 소식이 뜬 머나먼 아울렛에서 와인 숲을 배회한다. 이 병 저 병 들었다 놨다, 전전긍긍하다 결국 하나를 골라 든다. 오늘의 이 와인은 내가 지불한 가격만큼 만족스러울까? 허락된 재화 안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매번 찾아내는 것은 인력(人力)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력으로 그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초저가 와인시장의 도래

대입 전형 결과를 기다리는 재수생의 마음으로 코르크를 여는 순간이 가장 조마조마하다. 결과는 언제나 노력과 운에 따라 판가름 난다. 때로 화가 날 정도로 실망스럽기도, 때로 유니콘을 만난 듯 우쭐하기도 하다. 그토록 예측불허이기에 인생은 의미를 갖고, 와인은 재미가 있다. 언제나 목표는 하나. 살 수 있는 가격대, 가능하면 그보다 싼 가격대에서 가장 맛 좋은 와인!

한동안 싼 와인이 시장을 지배했다. 1990년대, ‘술단지’처럼 생긴 병에 담긴 붉은 와인들은 초기 한국 와인 시장을 지배했다. 그것만이 와인인 줄 알고 마셨다. 달달하고 가벼운 맛은 돌아서서 생각나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이 성숙되는 동안에 먼저 나타난 것은 고가 와인 시장. 만화 ‘신의 물방울’처럼 호들갑스러운 시대였다. 그 시기를 지난 한국 와인 시장에는 이제 중저가의 ‘데일리 와인’(적당한 가격대의 일상 소비용 와인)이 정착됐고, 다시 초저가 시장이 돌아왔다. 롯데마트에서는 1만원 미만 와인이 두 병 중 한 병 꼴로 팔려나간다. 전체 판매량 중 1만원 미만 와인 판매량이 작년 46.8%, 올해 51.3%를 차지했다. 이마트에서도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체 와인 판매량 순위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1만원 미만 제품이 차지했다. 저가 술단지 와인 시대와 다른 점은 가끔 우쭐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와인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음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왼쪽부터 와인 칼럼니스트 김윤석, WSA와인아카데미 부원장 박수진, SPC그룹 소믈리에 안중민씨.
시음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왼쪽부터 와인 칼럼니스트 김윤석, WSA와인아카데미 부원장 박수진, SPC그룹 소믈리에 안중민씨.

싸고 맛있는 와인, 있을까?

서울 강남의 WSA와인아카데미는 진지한 와인 수도자들과 미각적 호기심 많은 초보 와인 마니아들이 신중하게 와인을 다루는 곳이다. 지난 4일 그곳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와인 시음회를 열었다. 시음 대상은 마트 판매 가격 1만원 미만(정가 기준)의 잘 팔리는 와인들. 각 마트에서 제공받은 판매량 순위표에서 수위(首位)를 차지한 와인 위주로 레드 9종, 화이트 5종을 선정했다.

시음할 전문가도 섭외했다. 한국과 아시아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자 타이틀을 차지한 소믈리에 안중민(SPC그룹 소속)씨, WSA와인아카데미 부원장 박수진씨, ‘와인21닷컴’ 칼럼니스트 김윤석씨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시음회는 와인병을 검은 천으로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했다.

시음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시음에 임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석, 박수진, 안중민씨.
시음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시음에 임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석, 박수진, 안중민씨.

1만원 미만 와인은 아무래도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와인이 대부분이다. 땀과 시간의 장인정신대신 효율이 우선되는 산업 시설에서 만들어진 와인에 기대할 수 있는 바는 분명 제한적이다. 김윤석씨 역시 “1만원 미만 와인에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기준이 1만5,000원만 돼도 훨씬 선택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연 ‘싼 게 비지떡’일까? 온도와 습도가 완벽하게 관리되는 셀러 안에 늘어선 1만원 미만의 시음 대상 와인들, 근사한 시음회장과 진지하게 시음에 임하는 전문가들을 보며 머리 속에 떠오른 속담이 ‘개발에 편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심지어 ‘도둑 심보’ 같은 것들이긴 했다.

선입견 없이 공정한 평가를 위해 와인에 검은 천을 씌운 블라인드 시음회로 진행했다.
선입견 없이 공정한 평가를 위해 와인에 검은 천을 씌운 블라인드 시음회로 진행했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시음회 평가표는 캐릭터, 텍스처, 당도, 산미 등이 세분화되어 정도를 표기하게 되어있지만 시음 대상 와인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키워드 위주의 평가표를 별도로 마련했다. 대신 이해하기 쉬운 평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각 와인마다 예상 가격을 꼽아봤다.

시음 결과, 유니콘은 없었다. 1만원 미만 와인에서 크룩이나 샤토 디켐 같은 맛이 나진 않았다. 그걸 바란다면 ‘도둑 심보’인 것이 맞았다. 그러나 세상엔 언제나 작은 희망이 있다. 싸고 맛있는 와인이 현실에 있었다. 물론 제값보다 못하다는 악평을 받은 와인도 있었지만, 1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1만원 이상의 맛을 내는 와인이 몇몇 포함됐다. 불황의 식탁을 윤활해줄 ‘기왕이면 다홍치마’ 와인은 어떤 것일까. 시음표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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