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 비위 행태 고발”
임산부 좌석 앉는 남성 사진 등
제보자가 보내면 운영진이 올려
익명에 기대 허위사실 유포도
“해외 서버 등 단속 어려워”
오메가패치로 231명 신상 노출
경찰, 명예훼손 혐의 수사 착수
시민들 “나도 혹시…” 불안감
“증거자료 보내면 글 내려주실 수 있나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성병패치’ 계정 운영자가 지난달 말 게재한 글에는 A(29)씨가 운영자에게 보냈다는 비뇨기과 진단서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성병패치는 성병에 걸린 한국 남성을 제보해 달라며 개설된 온라인 커뮤니티. 계정에는 제보 대상자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 그가 걸린 성병 이름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운영자는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병원에서 성병검사를 받고 진단서에 음성이라고 나왔을 경우 삭제 후 정정 글을 올려줄 것”이라고 공지했다. 앞서 성병보균자로 지목돼 계정에 신원이 공개된 A씨는 해당 글 삭제를 허락받기 위해 운영자에게 증거물을 보낸 것이다. 6일 오후 운영자가 계정을 폐쇄하기 전까지 특정인의 신상정보가 담긴 제보 글은 40여건에 달했다.
SNS에 일반인들의 비위 행태를 제보ㆍ고발하는 ‘패치’ 계정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성폭행 혐의가 불거진 이후 등장한 ‘강남패치(유흥업 종사자의 신상 폭로)’가 논란에 휩싸여 삭제됐지만 곧장 ‘성병패치’ ‘오메가패치(임산부 좌석 앉는 남성 고발)’ ‘한남패치(성범죄나 간통 등 저지른 남성 고발)’ 등으로 확산된 상태다.
패치는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보도하는 한 매체의 이름을 따와 폭로하고자 하는 주제와 합성해 계정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패치 계정들은 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을 다룬다. 성매매나 간통, 성차별 등이 대표적이다. 제보자들이 사진 등 증거자료를 운영진에게 보내면 간단한 편집 과정을 거쳐 계정에 올리는 식이다.
패치의 등장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 첨단미디어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개인도 1인 매체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 불의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방송, 신문 등 전통 매체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목적성을 띤 것”이라며 “SNS의 익명성에 기대 자신은 도적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대상자에게는 순식간에 사회적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제보 내용이 대부분 명확한 사실확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신상털기’로 끝나는 탓에 법 규정에 저촉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확인 절차는 운영자가 온라인 상에서 제보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는 게 전부여서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전달했다 하더라도 사실상 검증할 방법이 없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최근 패치 운영자를 처벌해 달라며 수사를 의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4일과 27일에는 한남패치, 강남패치 운영자가 각각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됐고, 6일에는 경찰이 오메가패치 운영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까지 오메가패치와 한남패치에는 각각 231명, 40명의 사진과 신원이 공개돼 있었다.
그러나 처벌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간단한 개인 정보만 있으면 가입이 가능한 SNS의 특성상 운영자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해외에 있는 인스타그램 등의 서버를 수사하려면 국제공조가 필요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도 “이미지, 게시 글이 불법이라고 판단될 경우 사이트 접속차단을 하거나 인스타그램 측에 계정 삭제를 요청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패치 단속이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신원이 노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번지고 있다. 직장인 정모(26)씨는 “출ㆍ퇴근 때 이용객이 없으면 임신부 전용석에 앉기도 했는데 사진이 찍힌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신상털기와 허위사실 유포는 분명한 범죄인 만큼 당국의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패치에서 공개한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가능성이 크다”며 “심각한 인격권 침해 행위가 확산되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