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저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잘 준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전직 경찰서장에서 ‘퇴직 준비 전도사’로 변신한 정기룡 (59) 미래현장전략연구소장은 “경찰공무원이면 누구나 꿈 꾸는 무궁화 4개(총경)를 어깨에 달았지만 너무 일찍 퇴직해 방황했던 저를 반면교사 삼아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12월 말 공직자로선 이른 나이인 55세에 경찰복을 벗은 정 소장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했다. 은퇴 전 무수히 많은 일에 도전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했던 그였기에 막막함은 더 컸다.
정 소장은 은퇴 몇 년 전부터 퇴근 이후 시간과 주말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는 “박사학위는 물론, 학교폭력상담사, 사이버복지사, 제과ㆍ제빵기능사 등 자격증을 따고 떡 만들기와 손두부ㆍ수제초콜릿 제조 기술도 배웠지만 막상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집회 현장에 가서 근로자들을 돕는 노무사를 보고 노무사 자격증까지 도전하기도 했다.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며 피아노를 배워 교회에서 예배 반주를 했고, 자동차 정비까지 배웠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것은 정작 은퇴 후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설 자리를 찾지 못한 그의 어깨는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는 것’이었고, 정 소장에게 그것은 다름 아닌 ‘말’이었다. 정 소장은 스피치 학원을 다니고, 합숙까지 하며 강사 자격증을 따냈다.
정 소장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쑥스럽고 어려워 내가 말을 잘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며 “스피치 학원에서 만난 한 사람이 나에게 ‘말하는 게 재밌다’고 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말’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은 정 소장은 이제 은퇴 설계와 노후 준비에 대한 강연, 자문 활동을 하는 나름 유명 강사가 됐다. 각종 기관과 기업, 단체 등에서 강의 요청이 이어지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 소장은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 초 경찰서장 재직 시절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던 글을 추려 ‘퇴근 후 2시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퇴근 후 2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은퇴 후의 삶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자신의 경험을 딱딱한 설명이 아닌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벌써 1만부 가량 판매되며 3쇄까지 나왔다. 태국 출판사와 출판계약도 체결해 조만간 번역본을 출간한다.
정 소장은 “100세 시대에 퇴근 후 2시간은 퇴직 후를 위한 골든 타임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특기를 살리기 위한 소중한 시간”이라며 “퇴근 후 술집보다는 학원이나 학교에 2시간을 투자해야 은퇴 후 나의 몸값을 올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정 소장은 “자신이 잘 하는 걸 찾지 못했거나 자신이 없을 때는 아내에게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 소장의 ‘퇴근 후 2시간’은 노래로도 전파된다.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자와 40~50년대 중년을 위해 동명의 노래를 취입해 CD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이미 유튜브에는 본인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올렸다.
정 소장은 “작사는 내가 하고, 작곡은 소개받은 음악가가 맡았다”며 “앞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이 노래도 부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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