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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과 민주주의

입력
2016.07.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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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지만 올해 역시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협상 이야기다.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전망은 불투명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한 후 90일 이내에 최저임금 액수를 결정해야 한다는 법정 시한(지난달 28일)을 넘긴 지도 이미 열흘 가까이 지났다.

올해 상황은 심상치 않다. 지난 2주 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전원회의가 6차례나 열렸지만, 노사는 각각 시급 1만원(인상률 66%)과 6,030원(동결)이라는 최초 제시안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정부의 최저임금 고시 데드라인은 다음달 5일. 행정절차 상 이달 16일까지 최저임금액을 결정해야 하지만 누구도 낙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넓디 넓은 노사 양측의 시각차를 보건대 앞으로의 수순은 대략 예상이 가능하다. 노사 합의안이 아닌 전문가 그룹인 공익위원들의 중재안이 표결 처리될 가능성이 높고, 노사 한 쪽이 회의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 표결에 불참하는 연례행사도 이어질 수도 있다.

해마다 파행을 반복하는 최저임금 협상을 소모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노동자의 적정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나 안 그래도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사용자 측의 주장 모두 명분과 설득력을 갖고 있어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삼고 싶은 점은 두 가지다. 무엇보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노사 당사자 아닌 전문가들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논의구조 문제다. 최임위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5분의 1인 340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 단적인 예로 최근 10년 동안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익위원안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정부가 전원(9명) 추천권을 갖고 있는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을 주도한 셈이다. 최임위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요즘 열리는 회의에서 노사를 대표하는 위원들은 협상 상대방에게 자신의 논리를 설득시키기보다는 공익위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안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최임위의 성격이 이미 형해화했다는 지적, 행정부의 권한 남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

회의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폐쇄적 운영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회의장 밖은 단식농성, 기자회견 등으로 떠들썩하지만, 회의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최임위가 출범한 지 28년이 지났지만 지난해에야 겨우 전체 배석자를 4명에서 6명으로 늘리기로 했고 전체회의가 끝나면 보도자료를 내는 정도다. 물론 ‘최초요구안에 대해 추가적인 토론을 계속하였다’식으로 정리된 보도자료를 봐서는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알 수가 없다.“옳고 그르건 교섭의 내용이 알려져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TV 생중계도 되고 속기록도 있는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자는 정치권의 제안은 한번쯤 고려해볼 만하다. 최저임금이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중요한 노사문제이자 생활이슈인 최저임금 논의를 이른바 민주적 공론의 장으로 보낸다는 의미는 크다. .

해마다 이 맘 때면 언론은 최저임금이 얼마나 오를지 적정한 최저임금은 얼마인 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노동전문가인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사무차장 정책특보의 지적처럼“최적의 최저임금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일 수 있다. 최저임금의 적절성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론이 아닌 토론과 합의의 과정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결정의 민주성 강화, 논의 개방성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왕구 사회부 차장 fab4@hankookilbo.com

이왕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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