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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쉬면 망할 것 같은 불안감…일주일에 하루는 다 쉬게 만들자”

입력
2016.07.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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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있는 교육 전도사

일주일에 80시간 공부하고도

더 해야 될 것 같아 늘 쫓겨

쉬면서 다양한 경험 없다보니

학생들이 꿈을 꿀 수가 없어

제도적으로 규제하자

어린이 노동이 금지된 것처럼

휴일엔 학원 쉬고 등교도 못 하게

“창의력은 놀이공원보다 공터”

빈 시간 자꾸 채우려 해선 안돼

방학이다. 방학은 말 그대로 배움을 놓는 기간이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에게 방학은 공부를 놓는 기간이 아니다. 학기 중에도 방학 중에도 한도 끝도 없이 달려야 한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교육은 배움이 아니라 노동에 가깝다. 그것도 쉼이 없는 노동이다. 내가 가르친 한 학생의 표현대로라면 ‘공부하느라 공부할 틈이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기에 ‘쉼’이 있는 교육을 주장하는 교사단체가 있다. 지난달 27일 기독교 교사들의 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의 공동대표 임종화 교사와 만나 한국의 교육 현실과 ‘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좋은교사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그는 “정부의 자유학기제나 서울시 오디세이학교, 좋은교사운동이 추진하는 ‘쉼 있는 교육’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좋은교사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그는 “정부의 자유학기제나 서울시 오디세이학교, 좋은교사운동이 추진하는 ‘쉼 있는 교육’모두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태석 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어른은 노동 중독, 학생은 학습 중독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한국 학생들의 학습 시간은 지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비교한 것을 보더라도 보통 한국이 두 배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더 하다. 고등학교 2학년 특목고 학생들을 조사한 것을 보면 일주일에 80시간을 공부한다. 80시간이라는 게 뭐냐면 7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하루에 11시간을 공부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송도에 있는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 그래도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이미 절대 시간 자체를 공부로 보내면서도 쉬지를 못한다. 조급하고 더 해야 될 것 같아서 늘 쫓긴다. 그래서 충분히 못 쉴 뿐더러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학생들의 ‘쉼 없는 교육’의 실상이다.”

과거에 한국 학생들의 일상이 외국의 ‘믿거나 말거나(believe or not)’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대다수 외국의 사례로 보면 가능하지 않은 삶인 것이다. 나 또한 국제연대운동을 하던 시절에 외국 학생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었다.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다 집으로 갔다. 그 시간에 집에 가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침 7시 30분에 등교해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마치면 밤 10시였고 그 시간에 집에 간 다음에 다시 공부를 하면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식 학습이 너무 과잉되어 있다. 이게 과잉돼 있다 보니까 공부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다. 학생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는데 꿈을 꿀 수가 없다. 꿈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식 학습에만 치우치면서 다양한 경험이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기술과 같은 것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여기에서 쉼이 중요하다. 쉼 자체가 성장과 관계, 그리고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쉼을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가만히 있으면 왜 가만히 있냐고 말하면서 공부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의 삶은 피폐할 수밖에 없고 미래도 준비할 수 없다.”

쉼 없는 교육이 청소년들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어른들은 노동중독에, 학생들은 학습중독에 빠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쉴 때도 ‘그냥’ 쉬면 안 된다. 효율적으로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의미 있게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쉬는 것도 쉬는 것 자체가 아니라 교육적인 의미가 있어야지만 겨우 쉬는 걸로 인정된다. 그 결과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라 다른 노동이고 학습이 되어 버린다. 임종화 대표 역시 지금 쉼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쉼의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었다. 너무 노동과 학습에 가치관이 매몰돼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다 보니까 이런 경향이 있지만 성적 향상이 되지 않았을 때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쉼 자체가 학생들의 삶에 의미 있는 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모두 함께 멈추도록 제도로 규제해야”

“쉼을 노동과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쉼을 노동 재생산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면 노동이 많아지면 불가피하게 쉼을 희생하게 된다. 기독교 교사로서 말하면 이건 위험한 발상이다. 노동과 상관없이 쉼-안식은 절대 침범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노동에 종속된 쉼이 아니라 노동보다 앞선 쉼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쉼이란 기획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쉼이다. 그냥 쉬는 것 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쉼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그렇게 충분히 쉰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쉼에 들어갈 것이다. 이런 쉼의 중요성은 이미 교육 안에 들어와 있다. 보수적인 정부에서 추진한 자유학기제 같은 게 대표적이다. 학생들이 쭉 공부만 하다가 잠깐 한 학기 정도는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교육 안에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교육에 특별히 필요한 것이 ‘옆을 볼 자유’, ‘가다가 멈출 자유’라고 했다. 한 번도 멈추지 못하고, 옆을 보지 못하면서 앞만 보고 내달리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문제는 이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으면서도 왜 멈추지 못하냐는 점이다. 나만 멈추면 나만 도태되고 망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질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모두가 함께 멈춰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쉼’이 개인에게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학원 심야 영업 시간을 밤 10시에서 11시로 늘리려는 최근 서울시의회의 시도에 대해 좋은교사운동이 반대하는 이유다.

“정책적으로는 간단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좀 쉬는 시간을 확보해주자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그러니까 휴일에는 좀 학원도 쉬고 학교도 등교 안 하게 해서 학생들이 쉬게 하자는 것이다. 평일에도 학원 영업 시간을 규제하고 그 다음에 학교에서 자율학습 시간도 규제하자는 게 우리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다 쉬면 좋다고 말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쉬어야 자기도 쉴 수 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학원 운전기사들도 다 같이 쉬면 쉰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이건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강제로 쉬게 하는 것에 대해 ‘학습권’의 차원에서 반발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도 명확했다. 그렇다면 80시간 노동도 자유라고 받아들일 것이냐는 것이다. 80시간 노동을 사회적으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80시간 학습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19세기만 하더라도 어린이 노동이 만연했지만 지금 금지된 것처럼 ‘자유’라는 말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정도 규제는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규제이며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좋은교사운동의 조사에 따르면 규제를 통해 쉼 있는 교육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80% 이상의 사람들이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나아가 이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지금과 같은 학습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그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이냐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력은 놀이공원 아닌 공터에서 나온다

“쉼 있는 교육도 그렇지만 자유학기제와 같은 것은 교사들에게도 좋은 기회다. 이게 여전히 관료적으로 들어와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교사도 교육의 전문가로서 자기 역량을 실험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시험 문제를 내는 것처럼 틀에 맞춰진 평가를 할 필요가 없이 오롯이 자기가 가르치고 싶은 방식대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교육을 교사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교육 전문가로서 교사들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이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하다 보면 경험이 쌓이고 서로 경험을 교류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안 해 본 것을 하는 것이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문제는 이 불가피한 것을 불가피하지 않게 생각하다 보니 그 어떤 새로운 제도도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꾸 거꾸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있다. 그게 우려스럽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생기면 자꾸 채우려고만 한다는 점이다. 그는 쉼 있는 교육에 대해서도 그건 비우는 문제이지 채우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쉼 있는 교육에 대해 임종화 대표가 마지막으로 걱정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저 빈 시공간으로 남겨두지 못하고 이 시간을 매끈한 소비 자본이 여가 문화니 뭐니 하면서 세련되게 채울 것 말이다. 그러면서 쉼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주체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시키게 되는 것을 걱정한다. 구경꾼으로 전락해서 바쁘게 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자발성이 모든 것이 잘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빈 공터에서 더 잘 발휘되는 것처럼 빈 시간과 빈 공간이 필요하다. 좋은교사운동이 주장하는 ‘쉼 있는 교육’은 모든 것이 빡빡하게 채워지고 있는 한국의 교육을 멈추어 세우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문화학자

●임종화 대표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대안교육운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신여고와 영신간호비즈니스고에서 학생들에게 사회 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교사들의 모임인 ‘좋은교사운동’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것은 2013년부터다. ‘쉼 있는 교육’을 주창하고 있다. 쉼이 노동에 종속된 게 아니라 노동보다 앞선 삶의 요소라 생각해서다. 교육 문제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 1 대 1 결연 캠페인과 학습 부진아 연구,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 제시 등이 요즘 집중하는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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