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부총재 자리 요구… “중러 합의” 보도도
러시아 AIIB 지분, 한국보다 높은 3위
홍기택 부총재(전 산업은행 회장)의 휴직으로 비어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 자리가 다른 나라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AIIB가 복직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새 사람을 뽑을 태세인 데다 러시아가 부총재 자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한국인 후임자로 대체하자”는 정부의 설득이 먹힐 여지는 점점 줄고 있다.
7일 정부와 국제금융계 등에 따르면, AIIB는 조만간 부총재 공모 관련 공지를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신임 부총재 인선에 나설 예정이다. AIIB에는 영국 한국 인도 독일 인도네시아 출신 부총재 5명이 있는데, AIIB는 일단 이와 별도로 부총재를 뽑은 뒤 홍 부총재가 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직서를 받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뽑는 부총재가 홍 부총재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홍 부총재의 빈 자리를 강력히 원하는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AIIB 내 지분이 우리(5위)보다 높은 3위(지분율 6.66%)지만 초대 부총재를 배출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통령까지 나서 부총재 자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소치에서 진리췬 총재를 만나 러시아가 AIIB 부총재를 맡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러시아 정부가 부총재 자리에 알렉세이 그루즈데프(베이징 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를 보내려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온다. 지난달 말 러시아 국영통신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러시아 경제개발장관은 “러시아 정부와 AIIB가 러시아인 부총재 지명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AIIB가 부총재를 5명으로 유지할 지 1명을 늘릴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AIIB가 새 부총재를 홍 부총재를 대체하는 식으로 뽑는다면, 경제ㆍ군사적으로 중러 결속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를 따돌리고 부총재 직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6일 브리핑에서 “새 사람을 채용할 지는 AIIB가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그런 일(신규 채용)이 벌어지면 우리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애초에 국제금융 전문성이 떨어지는 홍 부총재를 중국 측이 반기지 않았는데, 자기 발로 나온 만큼 강하게 압박하는 러시아에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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