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2003년 이라크전쟁에 참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조사한 ‘칠콧 보고서’가 세계 각지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 정치권과 군인 유가족이 일제히 참전을 결정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규탄했지만 블레어는 “다시 하더라도 그때와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 반박했다.
칠콧 보고서는 영국의 이라크전쟁 참전이 잘못된 정보에 근거를 둔 부적절한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6일(현지시간) 보고서 공개 직후 이라크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장병 유가족들은 이에 분노를 터트렸다. 유가족단체의 법적 대리인 매슈 주리 변호사는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이 무의미하고 부정한 이유로 희생당했음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형제를 잃은 사라 오코너는 “블레어는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라고 발언해 유가족들의 박수를 받았다.
영국 정치권도 일제히 이라크전쟁을 반성하고 비판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전사자 가족을 만나 “국가를 재앙으로 이끈 결정에 대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당시 전쟁 반대 입장에 섰던 팀 팰런 자유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영국 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막론하고 ‘블레어 때리기’에 나섰다. 반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블레어 전 총리의 이름이나 그의 오류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과거에 오류가 있었으며 우리는 그 잘못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신중하게 발언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이날 보고서 발표 후 2시간에 이르는 해명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다시 같은 상황이 닥쳐도 동일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내각을 속이지 않았고, 정보당국 보고서에 따라 합법적인 정책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사담 후세인 없는 세계가 더 나은 세계이다”라며 “이라크전쟁이 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보고서가 간과해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보고서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래도록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 왔으며, 대통령 임기 내내 그 후폭풍에 대처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이라크전쟁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수석 조언가였던 칼 로브는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사담 후세인은 지역 내 혼란을 부추긴 인물”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전으로 인한 권력공백 때문에 이슬람 국가(IS)가 등장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IS가 지금처럼 기세를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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