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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진 피해에 따뜻한 손길… 우리 신념은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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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진 피해에 따뜻한 손길… 우리 신념은 헛되지 않았다”

입력
2016.07.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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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계 경험 공유할 기회 늘어

대학가에서부터 교류 활성 움직임

SECA로 한국 전자제품 수출 증가

에콰도르 농산물 심사도 빨라지길

6ㆍ25 전쟁 때 무기 대신 쌀 지원

60년 뒤 인도적 지원으로 돌아와

과도한 경쟁에 돌입한 한국 사회

한국인은 행복을 잊지 않기를

오스카 에레라 길버트 주한에콰도르대사가 1일 서울 종로구 에콰도르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오스카 에레라 길버트 주한에콰도르대사가 1일 서울 종로구 에콰도르대사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8억9,731만2,700원.’ 서울 종로구 주한 에콰도르대사관의 회의실에는 매일 새로운 숫자가 적힌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아홉 자리 숫자는 다름 아닌 한국 국민이 지난 4월 규모 7.8의 강진 피해를 입은 에콰도르에 보내 온 구호 성금 액수다. 한국 정부나 일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현지로 직접 전달한 대규모 지원금을 제외하고 주한 에콰도르대사관의 특별계좌로 송금된 금액만 9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1일 만난 오스카 에레라 길버트 주한 에콰도르 대사는 붓글씨로 ‘힘내요 에콰도르’(Animo Ecuador)라고 적힌 액자를 자랑하듯 내보였다. 대전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보냈다는 선물을 미소 지으며 쳐다보던 에레라 대사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한국과 에콰도르의 오랜 우정을 강조했다.

_에콰도르를 향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이 기회를 빌어 에콰도르에 도움을 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보내주신 따뜻한 손길 덕분에 에콰도르 국민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중앙정부를 비롯해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국민, 사기업, 공기업 모두 피해 복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꼭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_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부 단체가 있나.

“하루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이 대사관에 무턱대고 찾아왔다. ‘에콰도르를 구합시다’(Save Ecuador)라고 적힌 상자 안에 그림 엽서 70~80장을 가득 채워 왔다. 아이들이 엽서를 제작해 판매한 다음, 엽서를 산 친구들이 에콰도르에 전하는 메시지를 적어 다시 모았다고 했다. 메시지를 하나하나 모두 읽었는데, ‘이겨낼 수 있다’‘포기하고 싶겠지만 힘내세요’ 등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 했다. 기부금은 200달러였지만 그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 준 마음에 감동 받았다. ”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에콰도르를 돕기 위한 성금을 보내왔지만 여전히 피해지역 주민들의 일상이 정상화되기까지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에콰도르 정부는 지난달 초 지진 피해 복구에 최소 33억달러(약3조8,4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_피해 복구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나.

“수습 초기 단계, 즉 생존자 구출과 이재민 임시 거처 마련, 부상자 치료는 상당 부분 마무리된 상태다. 현재까지 673명이 사망했지만 실종자 중 20명은 무사히 구조했고 7만여명의 주민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는 재건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_주로 저소득층 주거지역의 피해가 크지 않았나.

“도시의 80%가 파괴될 정도로 피해가 컸던 페데르날레스의 경우 특히 그렇다. 페데르날레스가 속한 에스메랄다주는 아프리카계 주민의 97%가 거주하는 곳이다. 16세기 식민통치 시절 스페인 통치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남미 대륙으로 노예를 이송하던 중 전복 사고로 도망친 생존자들이 이곳에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보다 인구가 적어 개발도 더딘 데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소규모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집을 잃은 주민들은 임시 거처에서 생활 중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워낙 작은 규모라 어업은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진이 2,000번 이상 발생한 현재 페데르날레스를 비롯한 취약 지역에 다시 집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이곳 주민들의 대규모 이동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재건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주한에콰도르대사관에 붓글씨로 '힘내요 에콰도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김정원기자
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주한에콰도르대사관에 붓글씨로 '힘내요 에콰도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김정원기자

지진피해 지원이 한국과 에콰도르의 첫 인연은 아니다. 에레라 대사는 지진 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6ㆍ25전쟁 당시 한국에 물자지원을 하며 시작된 인연을 언급했다. 현대자동차가 1976년 최초로 자가용 ‘포니’를 수출한 곳 또한 에콰도르였다.

_한국과 에콰도르의 역사적 연결고리가 적지 않다.

“에콰도르 정부는 평화와 비무장을 지향하고 있다. 전쟁 당시 한국에 무기를 지원하는 나라들도 많았지만 우린 대신 쌀을 지원했다.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배고픔을 견딜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과거 우리의 인도적 지원이 60년 만에 또다른 인도적 지원으로 이어졌다고 느꼈다. 우리의 신념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가 됐다.”

_현재 남북 관계를 평가한다면.

“현재 북한이 계속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하는 것에 대해 에콰도르 정부는 반대 성명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우린 대화를 통한 분쟁 해결을 지지하며 개입을 요청할 경우 제3국으로서 지원할 의사도 있다. 하루빨리 한반도가 평화를 되찾길 바란다.”

과거 에콰도르의 지원을 받던 한국은 이제 경제 강국으로 발전해 거꾸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입장이 됐다. 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한ㆍ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협상을 시작했다. SECA는 경제적 격차가 있는 두 국가가 관세 등 무역 환경 개선과 더불어 기술 전수 등 협력을 꾀하는 협정으로, 일반적인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포괄적인 형태다.

_SECA 협상에 있어 에콰도르의 최대 관심 사안은.

“최우선 과제는 농산물 인증 절차 부분이다. 자동차, 휴대폰 등 전자제품에 주력하는 한국과 달리 에콰도르는 농ㆍ축산물 수출 국가다. 협정 체결 시 한국은 즉각적인 수출이 가능하지만 에콰도르는 한국 검역본부의 농산물 인증을 받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국가 당 한 개 농산물만 심사 신청할 수 있고 한번에 최소 7년 이상이 걸린다. 2011년에 시작한 망고 심사는 현재 총 8단계 중 겨우 4단계에 와 있다. 레몬, 아보카도 등 우리의 주력 상품을 모두 판매하려면 최소 40년은 걸린다. 검역 심사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유연화했으면 한다.”

_SECA 체결로 기대되는 교류 확대 분야가 있다면.

“대학가에서부터 교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3년 한국 내 6,7명뿐이던 에콰도르 유학생이 현재 127명까지 늘어 났다. 에콰도르 장학생 유치 사업은 대사관이 가장 집중해 온 분야기도 하다. 특히 나노 기술, 생물공학과 같이 한국 학계의 전문성이 높은 분야에 있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늘리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에레라 대사는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단순한 메시지였지만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어본 적 있는 에콰도르에서 오는 울림은 강력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드시 행복(felicidad)했으면 좋겠다. 이 땅에 사는 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과도한 경쟁에 돌입하면서 행복을 잊지 않았나 싶다. 학생들이 과한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어른들은 따뜻한 가정을 만들 수 있게끔 한국 정부가 적극 도와야 한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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