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CJ헬로비전 인수 계획서
“5년간 5000억원 투자” 약속
공정위 불허로 백지화 가능성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이 사실상 무산되며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거대 기업들과 맞서 싸울 만한 콘텐츠 강자가 국내에선 등장하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자칫 안방마저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3월 CJ헬로비전과 합병하면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가상현실(VR) 영상 등 콘텐츠 제작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거둔 수익으로 1,800억원을 다시 투자, 5년 간 총 5,000억원 가량을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쏟아 붓겠다고 약속했다. 이 경우 경쟁 업체들도 콘텐츠 투자를 늘릴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청사진은 공정위의 M&A 불허 방침에 따라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물론 M&A 성사 여부와 별개로 대규모 콘텐츠 투자를 집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의 실익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현재 SK텔레콤의 인터넷(IP)TV 가입자는 335만여명으로, 가입자 382만여명을 둔 CJ헬로비전과 합치면 단숨에 전체 가입자가 717만여명으로 불어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가입자 기반이 그 정도는 돼야 모든 국민을 시청자로 둔 지상파 방송사,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1위인 KT(가입자 817만여명)와 경쟁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의미한 가입자층을 확보한 뒤 자체 콘텐츠 제작 및 유통으로 경쟁력을 올리는 사업 모델은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업체인 ‘넷플릭스’와 같다. 현재 190여개 국에서 8,100만여명의 유료 가입자를 둔 넷플릭스는 당초 방송사 등이 제작한 프로그램만 유통했다. 이후 2013년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가 대박을 내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예능,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등 지금까지 제작한 프로그램 수는 100편이 넘는다. 특히 넷플릭스는 현재 봉준호 감독이 제작 중인 영화 ‘옥자’의 제작비로만 5,000만달러(약 582억원) 전액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한국 영화 제작비 가운데 최대 규모다.
사실 국내 영상 콘텐츠 산업은 이렇다 할 기폭제가 없는 상황이다. 인터넷(IP)TV 업체들에 밀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인 케이블TV 업체들은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방송 콘텐츠 수출액은 3억7,000만달러(약 4,300억원)로 게임 수출액(32억달러)의 10% 수준이다. 애니메이션 투자는 더 저조, 지난 5년 내내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대 초반에 머물렀다. 이광훈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료방송시장 재편을 통해 업체 간 경쟁을 촉진해야 할 시점에 그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린 셈”이라며 “해외 진출을 노리긴커녕 넷플릭스 등 콘텐츠 공룡에 시장을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콘텐츠 산업 발전’이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적을 만들지 말자’란 정치 논리로 판단한 것이란 시각도 없잖다. SK텔레콤과 CJ의 성장을 의식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강력한 반대, ‘여소야대’로 바뀐 20대 국회, 청와대의 입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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