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실태 드러낸 이정현 녹취록
정부ㆍ여당 말장난과 궤변으로 일관
은밀한 보도개입 현재진행형 아닌가
그를 처음 본 건 1991년 견습기자 시절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한 선배가 우람한 덩치의 그에게 인사를 시켰다. “이 분은 전직 대도(大盜), 감방에도 다녀 오셨지.” 영문도 모른 채 눈 내리깔고 쩔쩔매는 신참 모습에 선배들은 폭소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가 1986년 9월 월간 ‘말’을 통해 폭로된 ‘보도지침’ 사건의 주역, 김주언 기자란 걸 알았다.
당시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였던 그는 군부독재정권이 특정 기사의 보도 가부(可否)와 제목, 크기까지 정해 언론사에 하달했던 보도지침 문건을 ‘훔쳐’ 공개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보도지침’ 사건은 언론 관련 집회ㆍ시위 현장에서 혹은 술자리 안줏거리로나 간간이 떠올리는 ‘전설’이 됐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이명박 정권 이후 방송장악 시도가 노골화하고 언론인 해직이 줄을 잇기 전까지는.
30년 전 보도지침의 악몽을 되살린, 정권의 노골적 방송통제 증거가 공개됐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언론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이정현 녹취록’의 구절구절은 ‘신 보도지침’이라 불러 마땅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김 전 국장에게 전화해 욕설까지 섞어가며 “해경 비판 보도 자제”를 압박했다. 더구나 앞서 김 전 국장이 공개한 2013년 ‘국장업무 일일기록’을 보면 길환영 전 KBS 사장 등을 통해 보도 통제가 무시로 이뤄졌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2014년 7월 전남 순천ㆍ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후보토론회 영상까지 입길에 올랐다.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왜곡보도, 언론장악과 관련해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하지 않느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허위 사실로 인신공격이나 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면전에 대고 비난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 가장 나쁜 오래된 적폐”라고 일갈했다. 이번 녹취록 공개로 허위라는 그의 주장이 되레 허위로 드러났지만,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통상적 업무협조 요청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더 기막힌 것은 방패막이를 자처한 정부ㆍ여당 인사들의 궤변 행렬이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요청)를 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고,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압력이 아니라 읍소”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김도읍 의원은 녹취록에 “하필이면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라고 주어가 괄호 처리된 걸 문제 삼아 “녹취록 전문을 보면 대통령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다”며 엄호에 나섰다. 단체로 ‘국어사전 새로 쓰기’ 운동이라도 벌이듯 통상, 본연, 압력, 읍소 따위 단어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국민들의 문장 해독 능력까지 시험대에 올릴 태세다.
상식을 저버린 자들의 뻔뻔함에 분노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녹취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김 전 국장이 이 의원을 줄곧 “선배”라 부르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항변하는 대목이다. 본래 보수적 성향에다 정권에 사실상 장악된 공영방송에서 보도국장에 오르기까지 ‘인정’도 받고 ‘보살핌’도 받았을 그가 ‘어쩌다 투사’가 된 현실보다 더 씁쓸한 것은 지상파 3사가 약속이나 한 듯 녹취록 사태를 외면함으로써 저 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 것이다.
KBS의 젊은 기자들은 5일 “우리 얼굴에 튄 더러운 침을 닦아내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며 보도와 법적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SBS 기자들도 당일 8시 뉴스에서 녹취록 기사가 30초짜리 단신 처리된 데 항의해 다음날 보도를 성사시켰다. 어렵게 목소리를 낸 기자들이 더는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야 할 때다. 국민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야당은 언론청문회 성사로, 언론인은 끈질긴 보도로.
이희정 디지털부문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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