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욱 경제부 기자
맞아본 사람은 안다. 매가 몸에 닿기까지의 무서움을. 때릴 듯 말 듯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맞는 사람의 고통은 배가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6일 내놓은 은행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사건의 결론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2012년부터 지난달까지 장장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은행들은 언제 결론이 내려질지 피를 말려야 했다. 은행들 입장에서 보자면 ‘때릴까 말까 재고 있는’ 공정위를 4년 내내 보고 있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정위는 “열심히 하기 위해 시간이 걸렸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죄(담합)가 있어 보여 조사를 시작했고, 그 죄라는 게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증거를 찾고 또 찾느라 긴 시간(4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번 조사는 (금융시장 불안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새로운 증거자료가 나오면 다시 조사할 것이다” 등의 발언은 ‘갑’의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장기간 조사를 받으며 고통을 겪어야 했던 당사자(은행)에 대한 책임감이나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공정위의 이런 인식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ㆍ합병(M&A)를 사실상 불허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장장 217일 만에 결정을 내리면서도 “더 오랫동안 심사한 것도 많다”며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등 당사자는 물론 방송ㆍ통신업계 전반의 혼란과 불안감이 확산된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유감 표시도 없었다.
검찰 등 사정기관에서는 “한 번 물고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은 하수, 물었던 것을 제때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은 상수”라는 이야기가 있다. 경제검찰이라는 공정위 역시 마찬가지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도 중요하지만, 아니다 싶을 땐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도 조사기관이 가져야 할 주요한 덕목이다. “공정위가 4년 동안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고 한 번 생각해 봐라”는 한 금융계 인사의 말을 곱씹어 봤으면 한다.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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