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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영화 등 2000곳 할인.. 다 좋은데 왜 평일이죠?"

입력
2016.07.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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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날’ 직장인은 구경만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시설 할인

박 대통령 지시로 2014년 도입

국민 38%만 경험 “시간 내기 어려워”

정부는 기업에 조기퇴근 독려할 뿐

“현실적 대안 찾아야” 지적 나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영화표도 비싸서 저렴한 날 이용하고 싶은데 그날은 꼭 회식을 하네요.”

한 정부 부처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김모(28)씨는 한 달에 한 번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정부가 문화시설의 문턱을 낮춰 시민들의 문화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정한 ‘문화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김씨의 상사는 퇴근시간이 빨라졌다는 이유로 부서 회식을 꼭 이날 잡는다. 김씨는 6일 “조기 퇴근이 가능해졌지만 회사에서는 다른 날 2시간 연장 근무를 시킨다”며 “회식까지 하게 되면 결국 문화의 날도 즐기지 못하고 일만 더 하는 셈”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영화관, 공연장, 고궁 등 주요 문화시설의 입장료를 대폭 할인하거나 면제해 주는 문화가 있는 날이 반쪽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혜택은 크지만 정작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에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문화콘텐츠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 인지도마저 낮아 정책 실효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2014년 1월 도입돼 어느덧 전국 2,128개의 시설이 할인ㆍ무료 입장에 동참하는 월례행사로 자리잡았다. 각종 문화시설을 평소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평일이란 시간대다.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장인이나 학생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해 프리랜서나 은퇴자, 사업가 등 시간ㆍ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만 즐길 수 있는 ‘럭셔리 행사’ 아니냐는 냉소가 나올 정도다.

김씨의 직장은 정부 산하기관이라 그나마 정부 정책에 동참을 하는 편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최모(26)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마지막 수요일을 즐겨본 적이 없다. 최씨는 “회사에서 안내도 해주지 않을뿐더러 요즘 매일 야근을 하고 있어 감히 얘기를 꺼낼 엄두가 안 난다”며 “직장인에게 퇴근 후 찾을 수 있는 값싼 문화콘텐츠는 드물다”고 토로했다.

문화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은 즐길 문화시설 자체가 없는데다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전남 소도시의 초등학교 교사 유모(26)씨는 “시골에서는 시간이 남아 돌아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딱히 갈 만한 여가 공간이 적다”며 “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행사 성과 쌓기에만 급급해 지방을 소외시키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고 있는 문화시설은 서울과 경기가 각각 391, 392곳으로 전체 이용 가능 시설의 35%를 넘는다. 반면 전남은 100곳에 그치고 있다.

도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삽화
도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삽화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냉담한 여론은 정부 설문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지난 4~5월 전국 15세 이상 2,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7.6%가 해당 행사를 알고 있었지만 이 중 프로그램에 참여해 본 사람은 38.1%에 그쳤다. 미참여 이유로는 절반 이상(57.4%)이 ‘평일에 시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았고, ‘혜택 정보 부족 (15.8%)’, ‘인근 문화시설 부족(12.1%)’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문체부 산하 기관에 3월부터 2시간 의무 조기퇴근 제도를 도입하는 등 행사 참여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융성위원회 관계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를 통해 민간기업에도 조기퇴근을 독려하지만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어 협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참여 문화시설의 운영시간을 야간까지 연장한다든지, 주말에 지정하는 식의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문화가 있는 날은 평일에 시간적ㆍ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만들어진 행사”라며 “일반 시민들이 문화ㆍ예술을 즐길 권리를 공적 차원에서 보장할 수 있게 시간대를 조정하거나 지역에 찾아가는 문화 공연을 늘리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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