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음식은 시칠리아인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이기도 하다.
맛의 천국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의 음식은 꽤 높은 대우를 받는다. 지중해 한복판의 비옥한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산물 자체가 워낙 좋은데다 문명의 태동과 함께 전해지기 시작한 각기 다른 문화의 레시피들이 조화를 이루며 시칠리아만의 독특한 요리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안토니 바르바갈로 시칠리아 관광청 청장은 “시칠리아를 찾는 관광객 70%가 음식 때문에 온다”며 “시칠리아 음식을 배우려는 관광객들을 위해 250개가 넘는 쿠킹 클래스가 운영될 정도”라고 했다.
그리스ㆍ아랍 문명이 전해준 황홀한 퀴진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에 터를 잡던 시절, 이 땅은 이미 호머가 찬양할 만큼 사과와 석류, 배, 올리브 등으로 풍요로웠다. 그리스인들에 의해 농사문화가 시작됐고, 이후 아랍의 식문화가 결합되며 시칠리아 음식엔 혁명 같은 변화가 이뤄진다. 사라센인들은 가지와 오렌지를 들여왔고, 파스타를 전해주었다. 또 사프란과 같은 향신료와 함께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의 견과류로 음식의 맛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또 사라센인이 들여온 사탕수수는 시칠리아의 대표 먹거리인 카놀리(Canoli) 같은 환상의 디저트들을 탄생시켰다.
판크라치아 라 투스카 지오르디니-낙소스 시장은 “시칠리아는 다름의 역사이자 다름이 하나가 되는 역사”라며 “이는 음식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시장은 “파스타는 아랍인들에 의해 시칠리아에서 먼저 시작됐다”며 “쌀 또한 아랍인들이 들여온 것으로, 밀라노가 리조토의 고향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한 여인이 밀라노로 결혼해 이주하며 전해진 것”이라고 했다.
아랍의 영향은 아이스크림으로도 이어진다. 아랍의 셔벗이 아이스크림의 기원이란 것. 라 투스카 시장은 “그 맛에 빠지면 절대 헤어날 수 없다는 시칠리아의 맛”이라며 그라니타(Granita)를 권했다. 슬러시처럼 얼음 간 것에 과일주스나 커피 아몬드 가루를 곁들이는 것. 많은 시칠리아인은 아침식사로 이 달콤한 그라니타에 빵을 찍어 먹는다.
그는 또 와인과 함께 넘어온 그리스 식문화 중 하나가 잎에 싸 조리하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레몬잎에 싼 미트볼인 폴페테 알라 포글리아 디 리모나(Polpette alla foglia di limona)도 그 중 하나다. 그리스인들이 포도잎에 싸서 조리하는 방법을 레몬잎으로 대신 응용한 것. 시칠리아엔 미트볼뿐 아니라 주꾸미 등 해산물을 레몬잎에 싸서 조리하는 음식이 많다.
날 것 그대로의 시칠리아, 라 페스케리아
카타니아시의 중심 광장 바로 옆엔 명물 시장이 있다. 오래된 건물 사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자리한 수산시장인 라 페스케리아(La Pescheria). 이곳에선 매일 아침 삶의 활력이 펄떡거린다. 색색의 열대어들과 함께 사람 몸뚱이만한 황새치가 좌판을 가득 메운다. 시장엔 작두만한 칼로 황새치를 토막 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물고기들의 비늘이 날선 햇빛을 난반사한다. 시칠리아의 날 것 그대로의 풍경에 관광객들이 넋을 놓는 곳이다.
이런 시장은 팔레르모의 카포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골목골목 이어진 재래시장에는 생선을 비롯 시칠리아 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와 채소 과일 등이 가득하다. 눈과 귀, 입이 즐거운 시장이다. 거의 비슷한 크기의 어종이지만 시칠리아 동쪽 바다에선 황새치가, 서쪽 바다에선 참치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시칠리아 요리엔 참치와 황새치를 재료로 한 다양한 메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총 내려놓고 카놀리나 집어
활기찬 시장 주변엔 길거리 음식이 지천이다. 팔레르모의 길거리 음식 중 대표적인 게 파니 카 메우사(Pani Ca Meusa). 소나 돼지의 삶은 내장 등으로 채워진 햄버거다. 한 입 물었을 때 물컹 터지는 육즙에서 시칠리아의 원초적 맛이 느껴진다. 진한 내장 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듬뿍 뿌려진 치즈와 레몬즙이 그 역함을 상당부분 상쇄한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는 카놀리(Canoli). 영화 ‘대부’에서 “총은 내려놓고 카놀리나 집어”란 대사에도 등장하는 디저트다. 원통형 얇은 과자에 설탕 듬뿍 들어간 다디 단 리코타 치즈가 채워져 있다. 여기에 설탕에 절인 과일이나 초콜릿 조각, 피스타치오 등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카놀리 만큼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포크가 아닌 손으로 집어 먹는다고.
시칠리아의 대표 파스타는 카타니아의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 토마토와 함께 기름에 조리된 가지와 리코타 치즈가 듬뿍 얹혀 나온다. 시칠리아엔 가지 요리가 유독 많은 것도 특징이다. 이 파스타는 카타니아가 배출한 작곡가 빈센초 벨리니의 대표작 오페라 ‘노르마’에서 이름을 따왔다. 팔레르모에선 정어리가 들어간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하다.
길거리 음식중 하나는 아린치니(Arancini). 고기나 채소 치즈 등으로 소를 채운 주먹밥을 기름에 튀겨낸 것이다.
팔레르모의 시장통에 있는 식당 포카체리아 니노 우 발레리노는 파니 카 메우사나 아란치니 등 시칠리아 서민 음식들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1802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니 역사가 깊다. 라자냐를 비롯 다양한 파스타와 가지를 활용한 색다른 음식들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카타니아 시내에서 피자가 먹고 싶다면 화덕 피자집인 코르테 데이 메디치를 추천한다. 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종류의 피자를 맛볼 수 있다. 단 1인 1피자가 원칙. 한 명당 피자 한판씩을 주문해야 한다는 것. 배부름을 각오해야 한다.
지중해 태양ㆍ화산이 빚은 시칠리아 와인
그리스인들이 문명과 함께 처음 들여온 와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법. 시칠리아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돈나푸가타(Donnafugata) 등을 비롯 많은 와이너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라구사 인근의 발레 델라카테(Valle dell’Acate)도 오래된 와이너리다. 이곳에선 오래 전 와인 추출에 사용되던 옛 기구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어 와인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보고와도 같은 곳. 1800년대에 처음 시작해 7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 와이너리는 자그라(Zagra), 일모로(Il Moro) 등이 대표 브랜드다.
활화산의 정기를 담은 에트나 와인은 특별대우를 받는 와인이다. 에트나산 자락에는 계단식 포도밭으로 꾸며진 바로네 디 빌라그란데(Barone di Villagrande) 같은 와이너리들이 여럿 있다. 이들 와이너리에선 정통 시칠리아 음식을 곁들이며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시칠리아(이탈리아)=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