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으로 제조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술개발을 통한 조선ㆍ해운ㆍ철강업체 간 윈-윈 사례가 눈길을 끌고 있다.
현대미포조선(대표 강환구)은 지난달 중순 국내 중견 선사인 일신해운과 5만톤급 벌크선 1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사진)했다.
일반적으로 벌크선은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선가도 낮아 국내 조선소보다는 중국 등 후발조선국에서 건조되고 있는 선종이다.
하지만 현대미포조선이 이번에 수주한 벌크선은 ‘이중 연료 엔진’을 장착하고,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 재질의 LNG연료탱크를 탑재하는 고효율 친환경 선박이다. 말하자면 겉보다는 내용이 알찬 선박인 것이다.
이 선박에는 벙커C유와 LNG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중 연료 엔진’이 탑재되며, 선주사의 필요에 따라 국제해사기구(IMO)의 대기 오염방지 3차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별도의 질소산화물 저감장치(EGR)를 향후 쉽게 추가 장착 할 수 있게 고안됐다.
아울러 이 선박의 추진연료 중 하나인 LNG를 저장하는 탱크의 경우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극저온용 고망간강으로 제작될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 조선업계 및 철강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국제해사기구가 규정하고 있는 국제가스추진선박기준(IGF CODE)에 따르면 LNG 연료탱크와 파이프는 영하 150도 이하의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니켈합금강, 스테인리스강, 9%니켈강, 알루미늄합금 등 4가지 소재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가 개발한 극저온용 고망간강은 초저온 환경에서 이들보다 강도와 인성이 훨씬 뛰어나고 경제성도 매우 높은 게 특징. 그러나 신소재 고망간강을 LNG 연료탱크 등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능과 안정성에 대해 전 세계 선급기관으로부터의 인증과 함께 국제해사기구의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되는 세계 첫 고망간강 적용 선박은 한국선급(KR)과 영국선급(LR) 2곳의 선급에서 이중으로 입급계약이 체결될 계획이어서 내년 11월 말 인도를 앞두고 벌써부터 건조과정과 실제 운용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선박 발주는 지속되는 불황으로 함께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철강ㆍ해운ㆍ조선업계의 산업간 모범적이 윈-윈 사례가 될 것으로 보여 의미가 깊다.
특히 일본과 중국 조선업계가 자국 해운업계와의 긴밀한 유대관계와 정부의 강력한 제도적 지원에 힘입어 장기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주절벽’으로 단 1척이 아쉬운 국내 조선산업 상황을 감안하면 국내 선사로부터의 고부가 선박 발주는 반가운 단비다. 또 발주사인 일신해운 또한 선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새 기술이 적용된 최신 선박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는 동시에 용선주인 포스코와도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공급과잉으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포스코도 이번 고망강간 적용 선박 건조는 새로 개발한 신소재를 다양한 산업에 적용하는 계기가 돼 미래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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