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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지게 풀어낸 음담...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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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지게 풀어낸 음담...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

입력
2016.07.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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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시집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을 펴낸 김민정 시인. “이게 시가 아니면 어때?”라고 말하는 듯 분방함이 가득하다. 문학동네 제공
7년 만에 시집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을 펴낸 김민정 시인. “이게 시가 아니면 어때?”라고 말하는 듯 분방함이 가득하다. 문학동네 제공

시인 김민정이 7년만에 시집‘아름답고 쓸모 없기를’(문학동네)을 냈다. 2005년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2009년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낸 시인이다. 설명이 부족하다면 다시 ‘젖이라는 이름의 좆’이란 시를 꺼낼 수 밖에 없다.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로 시작하는, 이 여러모로 아연한 시는 김민정이란 평범한 이름 앞에 여러 수식어를 달아줬다.

그의 시엔 개방적이란 말이 붙는다. 실제로 그 입에선 못 나올 말이 없다. “샘플로 견적내볼 어른 왜 없을까 국회방송 좀 보자니/ 어른은 어렵고 어른은 어지럽고 어른은 어수선해서/ 어른은 아무나 하나 그래 아무나 하는구나 씨발/ 꿈도 희망도 좆도 어지간히 헷갈리게 만드는데/ TV조선 앵커는 볼 때마다 왜 저렇게 조증일까/ 목 졸린 돼지처럼 왜 늘 멱따는 소리일까”(‘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 일부)

문제적이란 말도 붙는다. 독자가 시에 기대하는 게 무엇이든, 시인이 주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랑은 독한가보다/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톰슨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내 위에 올라탄 네가/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찰싹 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즉흥이다”(‘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일부)

페미니즘을 대변한다는 평도 있다. “만나보라는 남자가 82년생 개띠라고 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핏덩인데요. 이거 왜 이래 영계 좋아하면서. 젖비린내 딱 질색이거든요. 이래 봬도 걔가 아다라시야, 아다라시. 두툼한 회 한 점을 집어 우물우물 씹는데 어느 대학의 교수씩이나 하는 그가 내게 되물었다. 아나, 아다라시? 무슨 쓰키다시 같은 건가요? 일본어 잘 몰라서요.”(‘그럼 쓰나’ 일부)

그러나 개방적이라 하기엔 시인의 다리가 벌려진 각도가 심상하지 않다. 그 다리가 사람을 감싸고 지구까지 감쌀 만큼 벌려질 때 그건 개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제적이라 하기에도, 그는 아무것도 전복하지 않는다. 날 선 예민함으로 기성 문법에 반항하는 대신 시인은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지지며 욕쟁이 할머니처럼 걸진 음담을 풀어낸다. 그 중 세상이 허용하지 않는 말들이 있고, 이게 그의 시다. 김민정의 시가 페미니즘으로 읽힌다면 아마도 페미니즘이 사라진 어느 미래의 페미니즘일 것이다. 성의 구분이 모든 억압의 기준으로 사용됐던 시대를 지나 세계가 성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될 때, 성별을 몰라 차별도 못하게 된 그곳에서 시인이 브라를 풀어 헤치고 마음껏 방귀를 뀔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현대시’ 5월호에서 이번 시집을 “특유의 자유분방함에 깊이가 더해지니 이제 새로운 단계가 열렸다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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