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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다수결 민주주의의 붕괴

입력
2016.07.0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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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차선(次善)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은 최선(最善)에 내재하여 있는 위험, 특히 독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인류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한 일종의 지혜이자 경험칙이다. 다수의 판단이 비록 우매하고 소수에겐 횡포로 인식될지 몰라도 적어도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수의 의지에 따른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요즘 민주주의 발상지라는 미국과 유럽에서 뿌리째 무너지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서구 민주주의의 종말을 선언했다.

개인적인 호감 여부와는 별개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온갖 구설수에 휩싸이면서도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서 이겼다. 그러나 조만간 열리는 전당대회에 출석하는 대의원들은 미국 국민이 선택한 트럼프의 후보 지명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화당의 주요 지도부도 트럼프 지명에 반대해 전당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의 결과를 거부하겠다는 대단한 엘리트주의에 다름 아니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수천만 명의 미국 국민은 거의 봉이 된 심정일 것이다.

영국 국민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반응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영국 내의 도드라진 분위기는 어떻게든 투표결과를 뒤집어보겠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바다 건너 유럽의회의 마틴 슐츠 의장은 “군중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EU의 철학이 아니다”고 조롱했다. 유럽의 주류 언론들도 국민투표는 인종차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므로 무시해도 좋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영국 국민이 어림없는 객기를 부린 것인가. 영국 국민은 그런 엄청난 정치적 선택을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인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 민주주의는 타락한 지 오래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군산복합체와 월스트리트, 이스라엘 로비 집단 등 사적 이익단체가 미국 국민 이상으로 정부를 지배해왔다.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민주 평화론을 앞세워 미국은 다른 비민주주의 국가를 툭하면 공격했다.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길든 정권들이 시장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며 민주주의를 교란했다. 이런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이라도 한 것일까. 이제 서구사회는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껍데기마저 거추장스러워하며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일본에서도 조만간 목도할 것 같다. 다만 일본 국민은 다수결의 함정이 연출하는 더 치명적인 괴물을 만날 우려가 있다. 이런저런 예측에 따르면 이달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을 포함한 이른바 ‘개헌세력’은 전후 처음으로 개헌 마지노선인 3분의 2 의석을 획득할 수 있다. 중의원에선 이미 여당이 3분의 2 이상을 점하고 있는 만큼, 바야흐로 개헌이 가시화하는 셈이다.

문제는 일본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아베 신조 총리는 요즘 헌법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았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면 아베는 헌법 개정을 밀어붙여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어떻게든 만들려 할 것이다.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서도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지만 선거에서 이기자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안전보장 법제를 밀어붙인 전례가 있다. 일본 국민은 이렇게 아베 정권의 속내를 잘 알면서도 다시 여당에 표를 주려 한다.

하기야 남의 나라 민주주의를 탓할 때가 아니다. 선거에 지고도 민심을 수용하기는커녕 여전히 생떼를 부리는 정권, 다수결의 승리에 도취라도 된 듯 갈팡질팡하는 야권을 보면 한국 민주주의도 제 역할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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