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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소설 ‘채식주의자’ 주인공이 채식주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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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소설 ‘채식주의자’ 주인공이 채식주의자라고?

입력
2016.07.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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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에서 ‘주의’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해도 그냥 금연을 한다고 하지 “저는 금연주의자입니다.”라고 하지 않는데 왜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주의’라는 말을 찾아 보면 첫 번째 뜻이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이고 두 번째 뜻이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이다. 그리고 2번 뜻의 ‘주의’가 ‘이즘(ism)’과 동의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주의’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계화된 이론을 갖추고 있을 때 ‘주의’라는 말을 붙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이거나 담배 냄새가 싫어서일 터이므로 금연주의자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하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을 모두 채식‘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고기를 안 먹는 것을 모두 채식‘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입맛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입맛 때문에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아마 고기를 씹는 식감 때문에 고기를 좋아할 것이다. 이 식감은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원초적인 것 같은데,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콩 고기를 찾아 먹는 것은 그 입맛을 잊지 못해서이다.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 이유는 고기처럼 고기즙도 나오지 않으면서 오래 씹어야 하는 섬유질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씹는 게 훈련이 안 된 어린이들이 특히 채소를 싫어한다.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슬기가 예능 프로에서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채소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어린이를 보는 것 같아 귀여웠다. 그 어린이들만큼 씹는 식감 때문에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이런 입맛이나 취향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채식주의자라고 부르기에는 어렵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택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므로 어떤 체계적인 이론을 따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보다는 ‘채식인’ 정도로 불러야 할 것이다.

먹을거리는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의도적인 유머가 섞이기는 했지만 인터넷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토론거리는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다. 짜장면이 맛있냐, 짬뽕이 맛있냐에서 시작해서, 순대를 무엇에 찍어 먹느냐는 토론을 거쳐, 탕수육의 부먹 대 찍먹 논쟁에 이르기까지 먹을거리에 대한 토론은 생산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고 항상 이전투구로 끝난다.

각자의 입맛을 상대방에게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밥상머리에서는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그 취향이 아주 소수이고 처음 보는 것이라도 말이다.

건강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건강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건강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많다. 고기가 건강에 좋다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론의 형성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이상 이론에 따라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역시 개인의 선택이므로 이 경우에도 채식주의자라고 부르기는 어렵겠다.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지만 많은 ‘흡연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의지가 박약해서일 수도 있고 중독이 되어 몸이 말을 안 들어서일 수도 있고 건강보다는 담배가 주는 집중력이나 심리적 안정감이 더 좋아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개인의 문제이고 어떤 체계화된 이론에 따른 행위는 아니다. 건강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입맛보다는 건강을 중시하는 개인의 취향 또는 건강을 챙겨야만 하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특정 고기만 먹지 않게 되는 사례가 많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경험이므로 그에 따른 채식은 역시 채식주의는 아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도 꿈 때문에 고기를 멀리 하는데 일종의 트라우마 아닌가 싶다. 좀 더 분석이 필요하긴 한데, 만약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과 실상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입맛이나 건강 말고 고기를 먹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뭐가 있을까? 종교적 이유와 윤리적 이유가 남는다. 여기에는 채식주의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 철학,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 이전 칼럼 보기: 사람들은 왜 채식주의자를 불편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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