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가 6일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청와대의 언론 장악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진상 규명 청문회 촉구’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등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에 대한 언론계의 반발이 확대되고 있다. KBS 기자들은 KBS 뉴스에서 관련 상황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집단성명을 내며 비판에 나서 파문이 더 확산될 조짐이다.
언론노조는 6일부터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각각 ‘언론 장악 진상규명’ 촉구 1인 시위에 들어간다고 이날 밝혔다. 언론노조는 1인 시위와 함께 KBS 보도 개입 관련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대국민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여태까지 일어난 모든 ‘언론 장악’ 실태들을 조사해서 백서를 펴내겠다”고 5일 밝히기도 했다.
KBS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오후 KBS 보도본부 27기 18인은 ‘청와대 보도개입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 전 수석의 겁박을 실제로 접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며“KBS의 위상이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마음대로 전화를 걸어 욕설까지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딱 그 정도인가 보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의 녹취록이 공개된 지난달 30일 KBS 기자가 기자회견장을 찾아 취재한 뒤 기사까지 작성했지만 보도가 누락된 것으로 알려졌고 6일 현재까지 KBS 종합뉴스인 ‘뉴스9’에서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27기 기자들은 “KBS는 우리 얼굴에 튄 더러운 침을 닦아내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법적 대응은 고사하고 그나마 작성한 단신 기사도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27기 기자들은 보도국 간부를 향해 “불과 2년 전 청와대의 꼭두각시 길환영(전 사장)을 몰아낼 때 당신들의 결기가 거짓이 아니었다면 당장 침묵을 멈추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금도 (청와대의) 전화를 받는 게 아니라면 법적 대응은 물론 보도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SBS 기자들은 자사 뉴스의 축소 보도를 비판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던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보도국 소속 조합원들의 긴급발제권을 통해 ‘SBS 8뉴스’는 ‘세월호 보도개입 논란, 야당 청문회 추진’이란 리포트를 내보냈다. 긴급발제권은 중요 아이템이 뉴스에서 배제될 때 현장 기자들의 집단 발제로 보도 실무 대표자가 편집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밝히도록 한 제도다. SBS 기자들은 녹취록 공개 당일 관련보도가 30초 단신뉴스로 처리되자 기자들이 반발해 긴급발제권을 가동했고 이후 SBS는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SBS본부 측은 “도대체 이 당연한 기사가 왜 이리 어렵게 방송돼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방송개입이 본연의 업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의 입김이 SBS에도 미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 의원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징계무효소송 항소심 변론준비기일에 출석해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보도개입은 있어왔다”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진상 규명을 위한)청문회가 마련되면 모든 게 소상히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김 전 국장은 청와대 보도개입 논란에 대해 “(청와대가) 통화를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는지가 중요하다”며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KBS는 권력 견제와 감시가 매우 중요한데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라는 청와대 입장에 대해선 “난센스”라며 “정부 여당이 KBS 사장을 선임하는 현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다음은 KBS 보도본부 기자들의 성명 전문
<청와대 ‘보도 개입’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 딱 그 느낌. 이정현 전 수석의 겁박을 실제로 접했을 때. 그리고 그 화살이 우리의 존재 이유인 KBS 뉴스를 향하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을 때.
KBS 위상이 딱 그 정도인가 보다.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마음대로 전화를 걸 수 있고, 답변할 틈도 주지 않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그러면서 대통령도 봤다며 간교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
그런데 정작 KBS는 아무 말이 없다. 우리 얼굴에 튄 그 더러운 침을 닦아내는 시늉조차도 않고 있다. 법적 대응은 고사하고, 그나마 작성한 단신 기사도 무시됐다.
예상은 했다. 예상이 적중하니 또 한 번 피가 거꾸로 솟는다. 침묵의 이유는 뭘까.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 딱 하나 있다. “홍보수석으로 할 일을 한 것”이라는 치졸한 변명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 KBS 수뇌부에게 묻고 싶다. 정말인가? 혹, 지금도 ‘통상적인’ 전화를 받고 있는가?
아니라면, 정말 아니라면 당장 행동에 나서라. 회사는 법적 대응으로, 보도국은 뉴스로...우리 정말 화났다고, 잘못 건드렸다고... 그리고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이젠 어슴푸레한 기억 속 옛일이 돼버렸나 보다. 불과 2년 전 청와대의 꼭두각시 길환영을 몰아낼 때 당신들의 결기가 거짓이 아니었다면, 후배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주고 싶다면, 당장 침묵을 멈추고 행동에 나서라.
보도본부 27기 기자 김석 김기현 최대수 정수영 김정환 이진성 정영훈 이랑 김학재 이정화 이진석 정홍규 이병도 정지주 홍수진 정윤섭 김귀수 박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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