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투자계획 좌절 유감” 속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분위기
공정위 전체회의서 뒤집기 시도할 듯
일각선 M&A 포기 가능성도 제기
재기 꿈꾸던 케이블업계 ‘찬물’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ㆍ합병(M&A)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불허’ 조치를 내린 것으로 확인된 5일 방송ㆍ통신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SK텔레콤은 낙담했고, 현장에선 공정위 조치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SK텔레콤은 이날 “콘텐츠 및 네트워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료방송 도약에 일조하려던 계획이 좌절돼 깊은 유감”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어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여러 후속 대책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 경영진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잇따라 긴급 회의를 열고 향후 대책 등을 논의했다.
SK텔레콤은 공정위가 최종 인허가 기관은 아닌 만큼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우선 20일로 예상되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막판 뒤집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 결정은 여기에서 나온 결론과 방송통신위원회 의견 등을 바탕으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내리는 것이어서 아직 여지는 있다. 공정위를 상대로 불허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내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선 SK텔레콤이 공정위 결정을 구실 삼아 M&A 시도를 포기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3주 내에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불허 판단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만약 공정위가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승인 결정을 내렸다면 SK텔레콤은 CJ측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조건을 이행해야 했다”며 “SK텔레콤 입장에서는 불허가 차라리 나은 상황”이라고 풀이했다.
방송ㆍ통신업계에는 적잖은 후폭풍이 일 전망이다. 당장 공정위가 초유의 불허 결정을 내린 근거를 두고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두 업체가 합병할 경우 CJ헬로비전이 서비스 중인 23개 권역 중 최소 15개 권역에서 지배적 지위가 강화돼 공정한 경쟁이 저해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내놓은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전국 78개의 유료방송 권역 중 1위 업체의 점유율이 50% 이상인 권역은 43곳이다. 이 중 CJ헬로비전의 점유율이 과반인 권역은 이미 13곳이다. 1위 업체의 점유율이 과반은 넘지 않지만 40%대로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는 권역도 24곳이나 된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정부는 각 지역의 유료방송업체에 사실상 독과점을 허용하고 있는 상태”라며 “한 업체가 독과점하는 권역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해 합병 자체를 불허하는 것은 현재 기조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유료방송시장에는 ‘합산규제’라는 전국 단위의 규제가 있는 만큼 공정위가 권역 별로 쪼개서 다시 칼을 대는 것은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합산규제란 한 업체가 제공하는 모든 방송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을 합쳐서 전체 유료방송시장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계기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했던 케이블TV 업계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케이블TV 업체들은 인터넷(IP)TV에 밀려 전체 유료방송시장에서 간신히 50%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M&A와 매각 등을 통해 산업 재편이 절실한 시점에 공정위 결정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SK텔레콤 내부의 혼란도 클 전망이다. 무엇보다 CJ헬로비전 M&A 후 5년간 총 5,0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그 동안 회사 전체가 M&A 성사를 위해 매달려 온 만큼 실패의 책임을 물어 주요 경영진이 교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 이미지와 직원 사기의 추락도 불가피하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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