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벌의 옷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심이 많다. 타인의 시선을 끄는 목 부위를 위한 네크라인과 칼라, 팔의 움직임을 전달하는 소매, 여밈을 위한 지퍼와 단추, 손과 손목을 이어주며 옷을 벗기 쉽게 해주는 소매, 직물 표면의 프린트, 섬세한 장식주름, 포켓에 이르기까지. 이 요소들은 뒤섞이면서 옷의 표정을 만든다.
이 중에서 포켓은 실용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일상을 살아가려면 수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휴대전화 열쇠 신용카드 동전을 포켓에 넣고 다니면 손이 편하다. 포켓은 작지만 중요한 의복의 구성요소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포켓은 패션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포켓은 여행을 비롯한 이동성이 요구되는 인간을 위한 장치다. 가방과 지갑, 파우치처럼 소지품을 담기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포켓이 특정한 제스처와 포즈를 만들고, 이것이 성차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18세기의 여인들은 스커트 측면에 빗금을 내고 그 안에 주머니를 달았다. 주머니 표면에는 자수를 해서 예쁘게 꾸몄다. 형태는 여성의 자궁모양을 따서 만듦으로써 생명력과 출산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당시 여성들의 옷은 무게만 6㎏에 육박했고 수 겹의 페티코트를 입고 그 안에는 스커트가 풍성하게 보이도록 고래수염으로 만든 파니에란 틀을 넣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옷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모슬린이나 울을 소재로 한 옷들은 풍만함보다는 원통형의 날씬한 실루엣을 추구했다. 이런 옷들은 포켓을 안에다 달면 쉽게 옷의 형태가 망가졌다. 결국 속주머니는 사라지고 현대판 핸드백의 효시인 레티큘(Reticule)이 등장한다. 안주머니가 밖으로 나와 햇살을 보게 된 것이다. 19세기 여인들은 허리띠에 집안 가사활동과 관련된 물품들을 매달고 다녔다. 재봉도구, 향수병, 바늘집, 가위, 동전 통, 열쇠 등 소리 나는 것들을 매달고 다녔다. 이것은 서양 중세시대 영주의 부인들이 차던 ‘성의 안주인’이란 뜻의 샤트렌이란 것이었는데 당시 앤틱 바람이 불면서 다시 인기를 끌었다. 현대에 들어 샤트렌은 허리에 착용하는 가방 열풍의 영감이 되었다.
19세기 말에 가서 여인들은 드디어 포켓을 갖게 된다. 긴 편물 카디건이 유행하면서 측면에 포켓이 달렸다. 문제는 이 옷을 입고 여행하다가 빈번하게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겨울용 손 토시 안에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소지품을 담았다. 19세기 후반 남성들도 포켓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시대는 남성들에게 시각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요구했다. 예전처럼 포켓에 개인물품을 가득 넣어 다니다가는 옷의 형태가 무너지고, 이로 인해 칠칠치 못하다는 비난을 사야 했다. 현대의 정장도, 실제로 포켓이 달려있지만 사용을 못하도록 박음질 되어 있는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부부 초상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포즈가 똑같다. 여자는 의자에 앉고, 남편은 한 손은 아내가 앉은 의자에 살짝 걸치고, 나머지 손은 바지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여자는 호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항상 손을 내놓고 있다. 남편의 부와 그 혜택으로 인해 노동을 변제 받은 아내의 고운 손을 보여주는 것이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남자들은 호주머니에 자신의 손을 찔러 넣는 포즈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있었다. 남자들은 호주머니를 자신의 적극성을 드러내고 남성으로서의 행동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다.
1868년 영국의 공립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바지에서 주머니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시종일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니면 어슬렁거리거나 구부정한 몸가짐을 갖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19세기 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지적하는 문헌들이 급증했다. 국가이념이 나태해지고, 위생개념에 반한다는 가당찮은 이유를 늘어놓았다. 1914년이 되어서야 샤넬은 니트 카디건과 재킷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여성들을 위한 스포츠웨어로 탄생시킨다.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 건 신여성의 새로운 포즈였다. 주머니 하나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성차가 나뉜다는 게 참 놀랍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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