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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브렉시트, 그리고 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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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브렉시트, 그리고 황금종려상

입력
2016.07.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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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EU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EU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브렉시트’의 여파는 영화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다른 경제 분야에 미치는 악영향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 할 수 있으나 영국 영화인들에게 브렉시트는 악재 중의 악재입니다.

영국 영화계는 오래 전부터 유럽연합(EU)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EU의 여러 문화 지원 정책의 수혜를 입었고, EU라는 우산 아래에서 여러 유럽 국가들과 공동 작업도 수월하게 해왔습니다.

EU 회원국 영화계는 EU로부터 여러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MEDIA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지원 정책입니다. MEDIA 프로그램은 EU 회원국의 영화와 시청각 산업 발전을 위해 1991년 만들어졌습니다. EU 회원국에서 영상물이 왕성하게 만들어지고 제대로 보급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회원들 사이의 영화 합작을 독려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MEDIA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MEDIA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영화 21편이 칸영화제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 중 10편이 영화제의 꽃인 경쟁부문에서 상영됐습니다. 경쟁부문 초대장을 받은 영화 21편 중 절반 가량이 MEDIA 프로그램 출신이었던 거죠. 영화제 내내 화제를 불러모았던 독일영화 ‘토니 에르트만’과 스페인 유명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줄리에타’ 등이 MEDIA 프로그램이 종잣돈을 쥐어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MEDIA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신작으로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가 손잡고 만든 영화입니다. EU가 없었다면 올해 영국 영화계에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영광도 없을 뻔했던 셈이지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MEDIA 프로그램으로 영국 영화업계에 유입된 돈은 1억3,000만유로(1,668억7,000만원)입니다. 매년 200억원 가량이 영국 영화산업에 자양분 역할을 한 셈입니다. EU 지원금은 특히 저예산 예술영화들에 단비였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던 이 돈도 날아가게 됐습니다.

돈뿐만 아닙니다. 앞으로 유럽 여러 국가들과의 합작도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EU 회원국들은 영화 제작을 할 때 스태프들의 근로 조건과 임금 등이 공통적으로 적용돼 함께 일하기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여러 국가가 공동 제작을 할 때 직면할 수 있는 각 나라 별 규제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브렉시트로 영국 영화계와 합작을 하려는 EU 국가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영국 영화는 EU의 배급 지원 속에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마이클 라이언 영국 독립영화텔레비전연합 회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EU)공동 제작자, 배급업자 등과 맺고 있는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며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라이언 회장은 “우리(독립영화인)에게는 정말 파괴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영국 영화계는 브렉시트에 따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로 시장을 점령 당한 이후 최고의 위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국민투표를 앞두고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키이라 나이틀리 등 많은 영국 영화인들이 탈퇴 반대 운동에 나섰습니다. 물론 원로 배우 마이클 케인처럼 “탈퇴는 주권을 되찾는 일”이라며 브렉시트를 주장한 영화인들도 있었지만요.

어쨌든 국내 시네필들에게는 브렉시트가 좋은 뉴스는 아닐 듯합니다. 영국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수출될 수 있는 여건이 악화됐으니까요. 켄 로치, 마이크 리(‘비밀과 거짓말’과 ‘네이키드 런치’ ‘세상의 모든 계절’ 등)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영화 감독의 신작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됐으니 영화팬들은 우울할 따름입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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