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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늙은 개, 고양이와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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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늙은 개, 고양이와 산다는 것

입력
2016.07.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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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늙으면 평생 안 하던 행동을 한다. 그게 동물이건 사람이건. 얼마 전 아빠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뭔가를 집어넣고 계셨다. 이발하고 오시면서 산 아이스크림을 넣는 중이라는데 냉동실이 아닌 냉장실이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는데 냉동실이 꽉 차서 그런 거란다. 나름 이유가 있으니 치매는 아니겠지, 80대 중반의 노인이 암 투병을 하고 있으니 저 정도 인지 능력이면 별 문제 아니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이 들어가는 이와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갖고 산다. ‘생전 처음 하는 행동이지만 별일 아니겠지.’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의 작가이자 고양이 노튼과 사는 피터 게더스도 그랬다. 노튼이 나이 들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던 어느 날, 노튼 물그릇의 물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걸 보고서도 집에 난방을 많이 해서 물이 증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튼이 하루에 물그릇을 두 번이나 비우고, 개처럼 변기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데도 이상하다고만 느끼면서 며칠을 보낸다. 이 무슨 멍청한 행동인가 싶지만 이해할 수 있다. 노화의 증상을 받아들이는 순간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의 문제 행동에 관한 TV 프로그램의 작가가 문제 행동이 있는 노견 사례를 찾고 있는데 어렵다고 연락을 해왔다. 노견과 사는 분들은 오로지 건강만이 관심사라서 그럴 거라고 알려줬다. 실제로 노견과 사는 분들은 가끔 물리거나 대소변을 못 가려도 그러려니 한다. 내가 ‘나이 들었다고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된다, 개는 늙어서도 교육이 되는 훌륭한 종이다’라고 잔소리를 해도 안 통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기죽으면 안 된다고 오히려 나에게 뭐라 한다.

늙은 개,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늙은 개,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늙은 개, 고양이와 산다는 것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터 게더스도 평생 해오던 여행을 포기한 채 노튼 곁을 지키고, 주사가 무서워 병원도 멀리하던 사람이 신장질환이 있는 노튼에게 피하 주사를 직접 놓는 프로 간병인이 된다. 내가 아는 지인은 체중이 50㎏도 안 되는 여성인데 각종 노환으로 걷기 힘든 30㎏의 리트리버를 번쩍번쩍 들어서 옮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느냐는 우문에 “엄마니까!”라고 답한다.

이런 물리적인 변화 이외에도 순리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아끼고, 헌신하고, 타인이 주는 사랑과 희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며 인생이 변해간다. 이건 사랑했던 존재를 늙고 귀찮고, 버겁다는 이유로 포기한 자는 알 수 없는 영역의 가치이다.

나는 19세 노견과 이별했고, 지금은 15세 노묘와 산다. 떠난 노견은 평생 독립적인 아이였는데 늙으면서 자꾸 내게 의지해야 하니 불편하고 어색해 했다. 그럴 때면 그 동안 네가 내게 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불편해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아프거나 우울할 때 24시간 내 곁에서 위안을 주었던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기쁘다고도 했다.

물론 나이든 반려동물과 사는 일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다. 늙었어도 평생 매일 하던 산책을 계속 하게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나가면 “질기게 오래 사네” “네 부모한테나 그렇게 해라”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끝까지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욕먹을 일은 아니지 않나.

늙은 개, 고양이와 사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늙은 개, 고양이와 사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늙은 개, 고양이와 사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술을 할까 좀 더 지켜볼까, 병원을 옮겨볼까,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인데 치료를 포기할까 등. 그럴 때면 원칙이 필요하다. 나는 무작정 오래 살기보다는 삶의 질을 선택하고, 동물이 아니라 내가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고 선택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그래서 이별할 때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나이 든 아이들과 살다 보면 자신의 추한 민낯과 마주치기도 한다. 치매 증상인지 새벽에 깨서 두세 시간씩 베란다를 빙빙 도는 개에게 나는 이제 그만 좀 하고 자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늙고 말 못하는 동물 앞에서 드러내는 한심한 모습이라니. 그렇게 아이들은 늙어서까지 우리의 맨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고, 우리들은 아이들을 만난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된다.

피터 게더스는 노튼의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신장 이식을 비롯해서 많은 치료 방법이 있다고 설명해주는 의사에게 떨면서 말한다.

“당연히 제 신장을 노튼에게 주겠습니다.”

의사는 고양이 사이의 신장 이식을 말한 것이며, 사람 신장은 고양이에게 커서 어렵다고 알려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웃어넘길 에피소드지만 피터 게더스가 한 말이 진심임을 늙은 개, 고양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안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medi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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