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흔들었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세계인의 보편적 예측을 크게 벗어났다. 투표를 앞두고 진행된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조차 EU잔류를 원하는 표심이 4%포인트 이상 브렉시트 찬성 의견을 압도했고, EU탈퇴를 주도했던 독립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가 서둘러 “잔류를 지지하는 쪽이 이긴 것 같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사전 분위기는 브리메인(영국의 EU잔류)으로 기울어 보였다. 영국의 주류 언론들은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토대로 ‘하나의 유럽’이 깨어지는 일은 비현실적이라고 미뤄 짐작했다. 특히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이 투표를 불과 1주일 남겨두고 브렉시트 맹신자의 손에 살해당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지 않던 영국의 민심이 급속히 ‘잔류’쪽으로 향하는 흐름이 분명한듯했고, 세계 금융시장도 대변혁을 우려할 초대형 이벤트인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뒀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개표 당일 40년 넘게 철옹성처럼 버텨오던 유럽통합의 기치가 창졸 간에 꺾이리란 브렉시트 찬성자들의 예상은 그래서 마치 현실에서 마주할 것 같지 않은 공상과학영화 시나리오를 읽듯 덧없었다. 섣부르게 수건을 던졌던 독립당 대표처럼, 유수의 외신들도 개표함이 열리기도 전에 서둘러 잔류진영의 승리를 예단했다. 여론조사의 흐름과 주요언론의 보도를 지켜보는 세계의 눈은 자연히 브렉시트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뒤집어진 역사적 반전에 넋을 놓아야 했다.
영국인들이 브리메인으로 향하리란 예측이 어긋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실제 민심을 읽는 언론의 시각이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론지로 불리는 영국의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등 브리메인을 내다보고 주장한 언론들이 하나같이 브렉시트로 발생할 경제적 부담이 막대하다는 EU지도부의 셈법을 내세워 엘리트층의 의견을 대변하는데 치중한 것이다. 이들 언론은 이민자들을 밖으로 내치는 야만적인 결과를 브렉시트가 초래하는 만큼 나치에 반대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영국인이라면 잔류에 표를 던질 것이고, 그래서 브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으리란 논리를 펼쳤다. 끝내 브렉시트를 조용히 갈망했던 계층의 민심을 읽어내지 못한 정론지들의 주장과 예측은 실현되지 못했고, 이들 언론의 방향에 기대었던 세계의 언론들도 비슷하게 브렉시트를 앞서 예상해내지 못하는 오류를 따라야 했다.
공교롭게도 정론지에 비해 감성적이며 가끔 외설적이기까지 한 더 선(The Sun) 등 대중지들이 오히려 브렉시트를 원했던 민심을 정확히 내다봤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목소리를 내는데 서툴고 식자들의 계산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장마당 노점상과 폐광촌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민자들과 일자리를 나눠 가져야 하는 현실에 얼마나 넌더리를 내고 있었는지 차라리 싸구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잘 담아냈다.
여론의 실체를 읽어내지 못한 탓에 예상 밖의 결과를 마주하는 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당장 11월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이민자를 배척하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주류언론의 시각으로는 여전히 이성적이지 못하며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보다 현격히 낮다.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의 보도를 미국 민심의 실체로 믿어 의심치 않는 한국 등 세계 언론은 당연하다는 듯 미국 유권자들이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를 끝내 지지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다.
하지만 역사의 바퀴는 종종 얄궂게도 과거의 실수가 남긴 자국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일자리가 아쉬운 디트로이트, 오하이오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트럼프를 원하는 민심이 브렉시트처럼 무성하게 자랐을 수 있다. 민심을 두루 파악하지 못하는 주류언론과 이를 실제로 맹신하는 대중이 만난다면 연말 세계는 브렉시트에 못지않은 반전을 또다시 마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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