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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민주주의의 위기

입력
2016.07.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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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극적인 예가 히틀러의 등장을 부른 바이마르 헌법이다. 나치당을 제1당으로, 히틀러를 총통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것도 역사상 가장 이상적 민주체제였다는 바이마르 헌법에 의해서였다. 국민의 뜻에 의해 총통이 된 히틀러가 권력의 모태인 바이마르 헌법을 무너뜨리고 세계를 전쟁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이러니다. 정파에 의한 민의의 왜곡이 바이마르 헌법의 결함 탓일까, 아니면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원적 한계 때문일까. 히틀러가 없었다면 바이마르 헌법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 직접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 통치형태가 바뀐 데는 인구가 늘어나고 영토가 확장되는 등의 물리적 요인도 있지만 국가업무가 국민이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복잡해진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가 국민투표를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이유다. 미국이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이라는 간접선거 형태를 취하는 것도 국민의 ‘어리석은 결정’을 막아보자는 측면도 크다. 국민투표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중우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민도’가 우선돼야 한다는 건 그래서다. 1차 대전 패전의 참담함과 공포에 질린 독일 국민이 히틀러의 선동에 놀아난 이유다.

▦ 영국이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게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거세다. 애초에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게 옳았느냐,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투표했느냐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브렉시트가 갖는 복잡한 의미와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가 사전에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투표라는 방식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정파의 이해관계에 함몰돼 근거 없는 공포심을 조장한 게 국민의 냉철한 판단을 막았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 국민을 우민화하는 정치는 영국뿐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도 국민을 우습게 보기에 가능하다. 유럽에서 극우주의가 만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치가 국민에 먹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결국 답은 대의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의 강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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