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 등
범죄 수렁에 빠진 청소년들
음악치료 이수하면 처벌 않기로
청소년 5, 6명씩 조를 나눠
악기 연주에 작사ㆍ작곡도 체험
교육 끝나는 연말엔 합동공연도
억눌리고 공격적인 감정 해소
긍정적인 행동 변화 유도해
40%대 재범률 크게 낮춰

지난달 27일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예울마루 6층 프로그램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소년 6명이 모여 앉아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통기타 연주에 열중했다. 윤도현밴드(YB)가 부른 ‘나는 나비’의 기타 코드 악보를 보고 한음씩 연주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아주 작은 번데기~ 힘겨울지도 몰라~ 나의 꿈을 찾아~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랫말에 맞춰 ‘C-G-Am-F-C’ 코드를 번갈아 눌렀다. 손놀림은 서툴러 보였지만 연주하는 모습은 여느 밴드 못지 않게 진지했다.
기타 연주에 푹 빠진 김모(15)군은 지난 3월 길가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 경찰에 붙잡혀 검찰에 송치됐다. 담당검사는 고민 끝에 김군에게 음악치료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곳에서 만난 박모(16)군도 친구와 함께 의류매장에 들어가 옷을 훔친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처벌 대신 정서적 치유를 결정했다. 나머지 4명도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올해부터 이화여대와 함께 새로 시작하는 음악치료를 이수하는 조건으로 이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범죄자로 전락할 뻔한 소년범들이 처벌 대신 음악치료를 받는 것이다. 최은영 순천지청 소년범죄담당검사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자는 취지에서 예술치유를 도입했다”며 “치유과정을 통해 사회의 법질서와 규범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울마루에서 만난 소년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범죄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신아름 이화여대 음악치료사는 “이들을 처음 마주할 때 잘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만 지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친숙해져 말도 잘 듣고 연주도 곧잘 따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들은 기타 음을 잡는 선생님 말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김군은 “평소 좋아하던 음악도 듣고 친구들과 함께 기타도 배울 수 있어 즐겁다”며 “예울마루에 연주하러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며 활짝 웃었다.
청소년기는 심리ㆍ정서적으로 취약한 시기다.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충동 조절능력이 부족해 자칫 한 순간의 잘못된 행동이 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를 저지른 전국의 소년범이 8만여명에 이른다. 특히 소년범의 재범률은 매년 40%대를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남 동부권 청소년범죄는 절도가 30%를 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재범률은 지난해 21%로 나타났다.
▦전남 동부권 청소년범죄 유형별 현황(광주지검 순천지청 제공)
▦전남 동부권 청소년범죄 재범률 현황(광주지검 순천지청 제공)
사법기관에서 재범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지만 대부분 징벌적 제도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처벌보다는 이들의 감정을 조절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심리·정서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이화여대와 함께 소년범을 처벌대신 치유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했다. 4월 12일 법무부 법사랑위원 전남동부지역연합회, 이화여대, GS칼텍스와 ‘마음톡톡’ 예술치유 지원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예술치유 대상은 여수·순천·광양 등 전남 동부지역에 거주하는 보호관찰이나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된 소년범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년범은 30여명으로 5∼6명씩 6개조를 나눠 기타·드럼 연주, 작사·작곡 등 음악 활동을 직접 체험한다. 교육장소는 여수에 소재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전남동부지소와 전문 공연시설인 GS칼텍스 예울마루다. 교육이 끝나는 연말에는 청소년들이 예울마루에서 합동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화여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의 전문 음악치료사가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와 지도하며 매주 1회씩 70분간 총 15회 진행한다. 이들은 2013년부터 서울서부지검에서 위기청소년을 위한 음악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서울서부지검에서 음악 치유를 받은 위기청소년의 재범률은 15.4%로 국내 소년범 재범률 40~50%에 비해 월등히 낮아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여대 윤주리 팀장은 “음악치유는 범죄 행동에 대한 반성을 넘어 범죄에 빠져들게 했던 내면의 심리적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며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견해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범죄 예방과 재발방지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도 소년범을 대상으로 예술을 활용한 치유 사례가 많다. 영국은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 메시지의 가사와 함께 음원으로 제작한 뒤 함께 공유하는 음악치료를 하고 있다. 호주는 사과, 용서, 이해, 공감 등 여러 주제별 연극을 비디오로 제작·제공해 긍정적 정서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술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법기관뿐만 아니라 대학과 기업 등의 지원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윤 팀장은 “마음톡톡 프로그램은 관·산·학 협력모델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며 “사법기관은 소년범에게 치유적 선도를 시도하고 기업은 자원과 지역기반을 적극 활용해 지원하며, 대학은 학문·임상적 정보와 인적자원의 지원을 통해 가장 적절한 선도 방안을 제공하는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는 GS칼텍스는 2013년부터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집단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마음톡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심리정서 예술치유 사업을 통해 확보한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위해 올해부터 새롭게 전남 동부지역 보호관찰 및 기소유예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술치유를 지원하게 됐다.
이수정 GS칼텍스 CSR(기업의사회적책임)추진팀 팀장은 “음악치유는 억눌리고 공격적인 감정을 해소시키고 긍정적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며 “위기청소년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수=글·사진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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