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문제로 술 취한 손님과 다투던 대리 운전기사가 손님의 음주운전을 신고했다가 되레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운전 중이던 차량을 도로에 방치하고 술에 취한 손님이 직접 차를 몰자 경찰에 신고한 대리운전 기사 황모(55)씨를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달 8일 밤 서울 역삼동에서 신모(33ㆍ여)씨의 차량을 몰고 목적지인 도곡동 뱅뱅사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신씨는 목적지 근처에 다다르자 대치동으로 방향을 바꿨고 대치동에 도착한 직후에는 다시 원래 행선지였던 뱅뱅사거리로 갈 것을 요구했다. 신씨가 목적지를 계속 변경하자 황씨는 “추가요금을 달라”며 약속한 요금 1만원 외에 1만원을 더 달라고 했지만 신씨는 거절했다.
화가 난 황씨는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차량을 멈춘 뒤 내렸다. 뒤따르던 차들의 경적 소리에 신씨는 음주 상태에서 13m 가량 떨어진 주차장까지 직접 차를 몰았고, 황씨는 신씨가 운전대를 잡자마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했다.
곧 이어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신씨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당시 신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79%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대리기사가 도로 중간에 차를 두고 가버려 불가피하게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피해자임을 주장했다.
경찰은 신씨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황씨에 대해서도 음주운전을 하도록 유도한 점을 인정해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황씨는 “내 행동이 방조죄가 될 줄은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일부 대리 운전기사들이 술 취한 고객의 사정을 악용해 도로에 차량을 방치하고 음주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신고하는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며 운전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청은 4월25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음주운전 처벌 강화책을 추진한 결과 황씨와 같은 음주 방조범 76명을 검거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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