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 거장인 만봉 스님의 제자로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려 온 브라이언 배리(Brian Barry) 법사가 3일 암으로 별세했다. 72세. 탱화장(幀畵匠ㆍ부처 등을 그리는 장인)으로 한국 불교미술의 가치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서를 번역해 온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호 외국인 포교사였다.
미국 코네티컷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배리 법사는 23세였던 1967년 평화봉사단으로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를 찾았다. 당시 2년 계획으로 활동한 봉사단원들은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던 환경에 경악했지만 그는 “바다 냄새, 꽹과리 소리를 잊지 못하겠다”며 대학 졸업 후 돌아와 아예 한국에 터를 잡았다. 스스로를 ‘부안 부씨’라고 칭한 건 이때부터였다. 지인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를 ‘부형’이라고 불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발길을 재촉한 건 처음부터 불교의 영향이 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는 봉사단 시절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어깨너머로 들은 불교철학에 매료됐다. 1979~98년 대우그룹에 근무하며 틈틈이 대원정사 불교대학에서 불경을 공부했다. 1986년 한 미국 건축가의 통역을 위해 간 서울 봉원사에서 조화로운 단청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문득 전율을 느꼈고, 그 길로 봉원사 만봉 스님에게 청해 탱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만봉 스님 문하에서 밑그림만 수천 장을 그리던 그는 2년 만에 정식 제자가 됐고, 1985년 제11회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입선, 90년 같은 대회 특선 등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태국 왕실사원의 부탁으로 탱화를 그려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명실공히 불모(佛母ㆍ불화ㆍ불상을 만드는 사람)가 된 그는 온종일 방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수행으로 삼았고, 2006년 만봉 스님이 입적하자 유족들이 가족회의를 통해 “완성을 부형에게 맡기자”고 할 정도로 그의 실력과 열정은 유명했다.
1987년 대한불교 조계종 최초로 외국인 포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자신의 웹페이지 등을 통해 세계에 한국 불교의 가르침을 소개해왔다. 직접 그린 달마도, 관세음보살도, 탱화의 이미지는 물론, 불화를 공부하는 자세와 불화의 종교적 예술적 의의 등을 상세히 다룬 글을 올려 이목을 끌었다. 성철 스님, 법정 스님 등의 저서 등 불교 서적들도 번역해 영미권에 내놓았다. 이런 공로로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조계종은 처음 ‘명예 국제포교사’라는 직위를 만들어 그에게 선사했다.
2001년부터 폐암, 신장암을 앓아온 고인은 5년간 4번의 수술을 거치며 투병하는 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몸이 아플수록 수행하는 마음으로 부처를 그리겠다는 의지였다.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스님은 “70년대부터 고인과 알고 지냈는데, 한국 불교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최근까지도 전시회 등 왕성한 활동을 해온 분”이라며 “그 분의 수행자다운 삶이 우리 종교인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길 바란다”며 애석해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5일 오전 11시, 다비장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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