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 몇 달 병원에 있다가 얼마 전 퇴원했다는 그는 체중이 많이 줄면서 체형까지 변해 있었다. 늘 즐겨 입던 정장 차림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는 분위기도 과거와 사뭇 달랐다. 사실 그는 꽤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온화하게 변한 그는,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회복기에 찾아온 복병과도 같은 마음의 병이었다. 다 알고 있듯이 우울증에는 어떤 종류의 낭만도 깃들지 않는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겐 실오라기 같은 빛 한 줄기 들지 않고, 내면에서는 음습한 감정이 곧 터져버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는 병에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밖으로 나와 걷고 있었다. 힘겨운 걸음마다 젖은 진흙처럼 들러붙을 음습한 감정을 좀 알고 있는 내겐 그의 의지가 눈물겹게 느껴졌다. 그때 얼핏 머리를 스친 것은, 그가 나를 자신과 같은 유형으로 믿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마주친 나를 관찰하며 그는, 나의 내면에 잠재된 우울증의 떡잎 혹은 뿌리를 봤던 것일까. 행인들의 눈에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 있는 우리가 퍽 낙관적인 사람들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비관적으로 느끼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식대로 “인생이란 우리를 최후의 진실, 유일한 진실로 이끌어가는 오류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