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통합재가서비스 시범사업
현재는 각각 제공기관 찾아 신청
요양-간호 동시 이용 3%가 안 돼
만성질환자 삶의 질 높이기 한계
내년부터 상담 통해 서비스 배분 본격화
통합기관, 간호 인력 확충이 숙제
“저 왔어요. 아버지.”
지난달 2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요양보호사 김춘애(63)씨가 큰 방에 누워있는 김진호(87)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갑게 인사했다. 할아버지의 소변주머니를 살펴 본 김씨는 “예전에는 물을 너무 안 드셔서 소변 색이 진했는데 지금은 괜찮다”며 안심한 듯 웃었다. 전립선비대증으로 고생 중인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약수터에 갔다 미끄러지는 통에 허리까지 다쳐 그 후부터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주 4~5회 4시간씩 방 청소, 빨래 등 가사활동과 식사, 면도, 화장실 이동 등 신체활동을 돕고 있다. 가족들이 하루 종일 할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장기요양 3등급 대상인 김 할아버지는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돌보는 방문요양서비스 외에 지난 5월부터 방문간호서비스도 받고 있다. 2주에 한 번, 30분씩 간호사가 방문해 혈압, 맥박 등을 확인하고, 소변줄을 교체한다. 그 덕에 2주마다 한 번 차를 타고 인근 병원을 찾아야 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 가족들 부담은 물론, 허리가 좋지 않아 유독 차를 타는 것을 두려워했던 할아버지의 고통이 크게 줄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간호를 받으니 편하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방문해 “하루 4~5잔씩 물을 챙겨 드셔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김 할아버지의 건강관리도 달라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물 먹기를 마다해 입이 바싹 마르는 등 탈수 증상이 심했다. 간호사 박경숙(47)씨는 “가족 말은 안 들으시는데 제가 물을 안 드시면 방광염이 올 수 있고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니 태도가 달라지셨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만성 질환자의 건강 유지에 미치는 의료진의 힘은 이처럼 크다.
하지만 모든 노인 환자들이 김 할아버지처럼 요양ㆍ간호서비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김 할아버지처럼 방문요양과 방문간호를 적절히 섞어 이용하는 대상자는 3%도 채 되지 않는다. 장기요양 재가서비스 이용자는 6월 말 기준 총 27만3,684명. 이 가운데 방문간호를 이용하는 경우는 7,260명(2.6%)에 불과하다.
거동이 불편한 장기요양수급자의 대다수가 관절염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어 적절한 의료가 필요하지만 재가 서비스는 방문요양에 치우쳐 있다. 수급자가 알아서 방문요양ㆍ간호ㆍ목욕 등 서비스 제공기관을 각각 찾아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통합재가서비스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서울 부산 강릉 등 전국 22개 지역 30개 통합재가서비스 제공기관 이용자 300명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시범사업을 벌인 뒤 내년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통합재가서비스가 도입되면 대상자들은 한 번만 신청하면 서비스 제공기관의 사회복지사와 논의해 각자 필요에 따라 방문 요양ㆍ간호ㆍ목욕 서비스를 적절히 배분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본격 도입을 위해서는 방문요양ㆍ목욕ㆍ간호 등 3가지 재가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기관을 늘리는 게 선결 과제다. 현재 이런 기관은 전체 재가서비스 제공기관의 2%(352곳)에 불과하다. 복지부는 내년 중 수가 조정을 통해 통합재가서비스 기관이 확대되도록 유도, 해당 사업을 확장해 간다는 계획이다. 간호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 2015년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재가 간호사는 1,200명에 그쳤다.
이 밖에 요양보호사들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방문요양 시간을 쪼개서 사용할 경우 요양보호사의 급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연희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하루 4시간의 방문요양 중 서비스를 쪼개 이용하면 요양보호사 임금이 줄 수 있어 처우가 더 열악해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 관계자는 “통합재가서비스가 확대 도입되면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며 “요양보호사의 급여 문제는 수가 조정을 통해 이전보다 처우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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