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밤 JTBC 예능프로그램 ‘슈가맨’ 방송이 끝나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출연 가수들의 이름으로 도배되곤 한다. 방송을 통해 재조명된 노래가 실시간 음원차트에 재진입하는 ‘역주행’도 종종 볼 수 있다.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도 김국진, 강수지, 김완선, 최성국 등 지금은 중년이 된 과거 청춘스타들의 현재를 비춘다. 배우 이연수, 곽진영, 가수 이덕진, 김승진, 이규석 등 옛날 스타들이 새로운 출연자로 합류할 때마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2010년 전후로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복고 콘텐츠는 이제 대중문화계에서 하나의 조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초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1990년대 가수들의 히트곡 무대로 꾸민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기획해 큰 반향을 얻으면서 복고 콘텐츠의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 ‘슈가맨’과 ‘불타는 청춘’의 안정적 인기는 대중문화에서 구매력을 발휘하는 30~50대 소비층의 요구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최근의 복고 콘텐츠는 ‘토토가’ 때만큼 파급력이 크지 않다. 지나간 추억이 꾸준히 현재로 소환되고 있지만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경우가 더 많다. ‘슈가맨’을 발판 삼아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들 중에 재기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방송 직후 하루 이틀간의 반짝 인기와 관심이 수그러들면 다시 대중의 추억 속으로 봉인된다. ‘슈가맨’ 자체도 섭외의 어려움 때문에 이달 초 종영할 예정이다. 복고가 프로그램 안에서만 소비될 뿐 외연을 넓히지 못하는 건 ‘불타는 청춘’도 마찬가지다.
방송가 관계자들은 복고 콘텐츠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다. 복고 콘텐츠가 화수분처럼 무한하지 않을뿐더러 현재적 영향력을 지닌 복고 콘텐츠는 더더욱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시봉’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주역인 ‘세시봉’은 지금은 폐지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를 통해 재조명된 후 신드롬으로 번졌다. 아직까지 콘서트가 열리고 있고, 지난해엔 정우 한효주 주연의 영화도 개봉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세시봉 열풍은 당시 젊은 세대 사이에 불고 있던 통기타 열풍과 조응하는 면이 있었다”며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회귀하려는 문화적 움직임이 세시봉 열풍에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에도 충분히 재미 있고 의미가 있어야만 복고 콘텐츠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정 평론가는 “복고 콘텐츠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현재 트렌드와 잘 맞아야 한다”며 “결국엔 중장년층이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느냐에서 성패가 갈린다”고 짚었다.
복고 콘텐츠가 ‘현재성’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간은 팬덤이다. 얼마 전 ‘토토가’ 시즌2를 통해 해체 16년 만에 ‘완전체’ 무대를 꾸민 젝스키스가 방송 이후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가요계 복귀에 나서게 된 데는 팬덤의 영향이 크다. 세시봉도 대중문화의 소비층으로 등장한 중장년층의 문화적 취향을 대변하며 인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한 관계자는 “복고 콘텐츠가 현재진행형으로 유지되려면 팬덤의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며 “한국 대중문화는 소비층이 얇아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복고 콘텐츠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복고 콘텐츠의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응답하라’ 시리즈, ‘토토가’, ‘슈가맨’ 등 복고 콘텐츠가 포맷과 내용을 달리하며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건 여전히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추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복고는 신구세대 소통의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도 대중문화계가 꾸준히 관심을 가질 주제다. 다만 복고가 문화적 퇴행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는 있다. 정 평론가는 “복고와 함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전적 흐름도 공존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다음 세대 문화 트렌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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