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오가는 주말 기차 여행이 늘 편하지 않다. 통로에 빼곡하게 서 있는 노인들 때문이다. 편하게 다니려면 주말을 피하거나 입석이 없는 칸을 타면 된다. 하지만 이건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여유를 갖고 움직이는 노인들은 어디서든 좌석을 선점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그들이 아무리 일찍 움직여도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는 사람들에 비해 좌석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차 통로에 서 있는 수많은 고령자들을 계속 봐왔을 철도청에서는 일찍이 그에 맞는 배려를 해야만 했다. 노인들을 위해 인터넷 예매 비중을 좀 줄이거나, 현장에서 표를 사는 그들이 앉아 갈 수 있도록 넉넉히 표를 남겨두는 식으로. 철도청 직원이나 그들의 가족이 기차표를 못 구해 통로에 서 있을 리 없기 때문일까. 몇 년을 타고 다니는 기차 속에서 나는 매번 불편함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다 못해 아예 서서 오는 편을 택하곤 한다. 선 채 옆에 선 노인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다 보면 그까짓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는 척하는 젊은이들이 정말로 한심해 보인다. 인색함이 정체성처럼 보이는 젊은이는 의자 팔걸이에다 다른 사람이 엉덩이를 걸치는 것조차 꺼려 줄곧 팔걸이를 움켜잡고 있다. 그처럼 작은 실속에 연연하는 젊은이들의 노후는 과연 밝을까? 지금 젊은 자들이여, 냉혹한 우리 사회의 온도를 앞장서 올려두는 게 좋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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