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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감자가 남들처럼 나오기 바라믄 되겄소? 작은게 쪄 묵기는 딱 좋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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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감자가 남들처럼 나오기 바라믄 되겄소? 작은게 쪄 묵기는 딱 좋구마”

입력
2016.07.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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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머리통만한 감자 기대했지만

비료도 안 넣으면서 욕심 부렸나

작아도 너무 작아서 기운만 빠져

면사무소 직원의 ‘어르신’ 호칭에

기분 전환할 겸 이발까지 했는데

아내는 사흘 만에 알아봐 더 슬퍼

포도 대신 수박 심은 동생은

수입 열대과일에 밀려 손해만

오히려 국산 포도가 금값으로

이젠 경제까지 연구해야 할 판

들녘에 불과 연기가 가득하다. 밀을 수확한 뒤 논을 갈고 모를 심기 위해 밀짚을 태우는 모습이다. 유기물을 태울 때 미세먼지가 다량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어 적절한 대체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들녘에 불과 연기가 가득하다. 밀을 수확한 뒤 논을 갈고 모를 심기 위해 밀짚을 태우는 모습이다. 유기물을 태울 때 미세먼지가 다량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어 적절한 대체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농장이 해병대 머리 마냥 깔끔해졌다. 모내기 끝내고도 논에 신경 쓰느라 미뤘던 예초기 작업을 마쳤다. 꼬박 사흘 일이었다. 속이 시원했지만 서운했다. 무성한 잡초 베어내고 내 맘만 좋으면 되는데 꼭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게 이발이랑 비슷하다. 깎아놓은 모습을 이리 보고 저리 살피면서 혼자 씩 웃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어! 머리 깎았네” 식으로 “훤해서 보기 좋네” 한 마디 들어야 마땅하다. 너댓 명이 농장을 들락거렸는데 그 한 마디를 안 했다. 일부러 시선을 유도해도 딴소리만 했다. 여자들은 30cm 머리카락에서 2cm 자르고도 몰라본다고 삐치는데, 1m나 되는 풀을 메뚜기 마빡처럼 밀어도 몰라주니 안 서운하겠나.

감자 캐면서 위로 받고 싶었다. 전 이장님네서 빌려다 놓은 감자수확기(경운기 아래에 빗살모양의 기구를 달아 땅 속 감자를 표면으로 털어내는 기구)에 시동을 걸었다. 경운기 시동소리는 언제 들어도 흥분된다. 박자를 순식간에 올리는 중저음의 큰 북 소리만 듣고 있어도 일이 다 된 느낌이다. 며칠 전 슬쩍 캐 본 감자는 알이 적었다. “비 오기 전에 캐야지 안 그라믄 썩어!” 하시는 어르신들 말씀에도 며칠 더 키우려는 생각으로 일기예보를 살피다가 이튿날부터 비 온다기에 캐기 시작했다.

작업 속도는 내 생각의 절반이었다. 사실 여태껏 예상대로 된 적은 한 번 없었다. 농사 지은 5년만이 아니라 살아 온 50년간 그랬다. 그러면서도 늘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고 여기는 내가 좀 비정상이다. 12개 두둑 가운데 겨우 6개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일기예보가 다음날 오후부터 비 온다고 했으니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하면 오전에 끝낼 만 했다.

필자가 감자 캐는 모습을 D동생이 촬영했다. 풀이 점령한 밭에서도 감자는 나온다.
필자가 감자 캐는 모습을 D동생이 촬영했다. 풀이 점령한 밭에서도 감자는 나온다.

문제는 감자 크기였다. 며칠 더 놔둔다고 부쩍 크리라는 기대는 깨질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너무 작았다. 절반이 조림용 감자였다. 올 봄에 친구네 비닐하우스에서 내 주먹만한, 애들 머리통만한 감자가 쏟아지는 걸 보고 똑 같은 방식으로 노지에 두줄 심기를 해봤는데 그게 착각이었다. 비료도 안 넣으면서 욕심만 보탠다고 똑같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남들은 너무 커서 문제라는데 그런 문제 좀 생겨 봤으면 좋겠다. 감자로 위로 받자는 계획도 허물어졌다.

집에 들어가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기운 빠져 흐물거리던 몸에 다시 삶의 의욕이 일어났다. 전날 아내가 보던 드라마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장면을 보고는 괜히 성질 내면서 잠이 들었는데, 내 몸이 그렇게 고기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아내가 알았나 보다. 씻고 나오니 냉면까지 식탁에 올라앉아 있었다. 삼겹살이 아닌 앞다릿살이고, 편육도 올라가지 않은 물냉면이었지만 효용가치로는 5성급 호텔 한식당 상차림이었다.

열심히 흡입하는데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머리 깎았네?” 나도 같이 웃었지만 슬펐다. 얼마 전,농지원부 떼러 면사무소에 갔는데 처음 본 직원이 나보고 ‘어르신’이라고 했다. 누군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하는 말로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촌에서 어르신이라 함은 적어도 노인회에 들어가는 만 65세 이상 혹은 무릎 아래 손주 한 둘은 있어 보여야 부를 수 있는 호칭인데 무슨 근거로 생글거리며 비수를 꽂았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 직원도 비슷한 근거로 그리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그래서 기분 전환할 겸 머리를 깎은 게 3일 전이다. 그 존칭이 다시 떠올라 슬펐고, 아내가 사흘 만에 알아봐 주니 더 슬펐다. 그나마 고기의 힘으로 감정을 주체했다.

임산부 아기 느끼듯 부른 배를 문지르며 기분 좋게 잠자리에 누웠다.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전화기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른쪽 콧구멍으로 뭐가 쑥 들어왔다. 아내의 손가락이었다. “어느 손가락이~게?” 내가 좀 우울해 보였는지, 아내는 장난치면서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나 보다. 중지인가 싶었지만 설마 그걸 날렸을까 싶었다. 좋은 뜻의 장난이니 나도 받아주기로 했다. “엄지손가~락!” 아내는 손가락을 쑥 빼갔다. 그러고는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이어서 어떻게 사람 콧구녕에 엄지가 들어갈 수 있냐고 추궁했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몰리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내 몸에서 탄력이란 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부위 중 하나였는데, 서운했다.

수확한 매실을 항아리에 담았다. 구례에는 매실 농가가 많은 편인데 올해 매실 값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확한 매실을 항아리에 담았다. 구례에는 매실 농가가 많은 편인데 올해 매실 값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벽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일찍 농장에 도착했다. 커피도 안 마시고 바로 경운기를 잡았다. 경운기로 두둑을 훑어낸 후 다시 호미로 감자를 찾아내며 추려내는 작업이 계속됐다. 날은 흐린데 땀은 쏟아졌다. 공기중의 수증기는 저들끼리 살짝 손만 잡으면 덩어리로 쏟아질 듯 꽉 차 있었다. 맘만 바쁘지, 손이 느려 속은 터지는데 이날 따라 전화벨은 많이도 울렸다. 장갑도 안 벗고 받다 보니 전화기는 이미 흙 범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희는 인터넷……” 세 통째 스트레이트다. 사람이 말하는 거면 이러는 거 아니라고 화라도 내겠다. 지들은 녹음기 틀어대면서 일을 방해하니 열불이 났다. “선생님 전화 받기 괜찮으세요?” 제법 예의를 갖춘 목소리라 “예 잠깐은요” 하면 “여긴 태양광업체인……” 바로 끊었다. 다시 호미를 잡는데 빗방울이 목덜미에 떨어졌다.

흙에서 나와 있는 감자만 급하게 추려 농막으로 대피했다. 최근엔 시간 단위로 잘 맞추던 일기예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조금 오다 그치겠지 했던 비는 질기게 내렸다. 땅 속 감자나 젖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앉지도 못하고 창 밖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트럭 한 대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H동생이다. 얼굴만 봐도 ‘바지런 덩어리’라는 걸 알 수 있는 친구다. “비 오는디 머 허요” 이곳 사람 대부분의 첫인사 방법이다. 더우면 “더운디 머 허요”, 시원하면 “날 좋은디 머 허요” 식이다. 전화 인사는 따로 있다. 낮에는 “점심은 묵었소?” 저녁에는 “저녁밥 묵었소?”로 시작한다.

“감자 캐다가 비 피하고 있어” 답하니 타박을 한다. “형님은 왜 머든 더디요?” 지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모든 경우를 들먹이나 모르겠다. “남들은 벌써 다 팔아 먹었구마. 알은 잘 들었소?” 묻기에 캔 감자를 보여주고 또 뭐라고 하겠구나 했더니 웬일로 “쪄 묵기는 딱 좋구마” 한다. 작기는 작다는 말이다. “형님이 넘들 맹키로 나오기 바라믄 되겄소. 나도 (비닐)하우스 감자 할 적엔 땅이 안 보이도록 소똥 깔아주는구만. 형님두 그리 헐라요?. 청승맞게 하늘 쳐다보지 말고 국밥이나 한 그릇 하러 갑시다.”

밥 먹으면서 H동생은 수박 얘기를 꺼냈다. 올해 처음으로 무농약 수박 재배를 시작했는데 시세가 좋지 않다는 거다. FTA 수입항목에 들어 망할 거라고 예상했던 포도는 국내 생산자들이 거의 업종을 전환한 탓에 국산 포도가 금값이 되고, 대신 수박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많아 생산량이 늘었지만 수입 열대 과일에 밀려 가격이 하락했다는 얘기였다. 이제 국제시장의 흐름과 국내 유통, 소비자 기호 등을 연구하고 예상하지 않으면 농사도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분야를 농부가 연구하기는 힘든 일이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생각도 없어 보이니 결국 살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식당을 나오다가 산불감시원을 같이 했던 동생과 마주쳤다. 매실농사로 매출 1억 가까이 하던 친군데 근황을 물으니 지금은 접었단다. “답 없어요 형님. 똥값이 나아요.” 3년 전에도 군이 지원금 줘 가며 매실나무를 심도록 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초과 공급이란다. 이런 식으로 가면 몇 년 안에 매실나무 다 베고 수입과일 재배하게 될 거고, 또 매실은 값이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걱정을 해 줬더니 지도 걱정 해준답시고 얘기했다. “형님, 형님은 왜 자꾸 배가 나온다요? 그러다 터지겄소.” 나 참, 꼭 나보다 뚱뚱한 것들이 배 갖구 지적질이다. 지는 식전이고 나는 식후인 차이구만. 120kg에서 20kg 뺐다고 지가 일반인인 줄 아나 보다. 같이 들이대면 꼴이 우스울 것 같아 자리를 떴다.

수확한 감자를 농장에서 삶아 봤다. 내 입맛에는 좋지만 남들 입맛에 맞을지 걱정이다. 작은 편이지만 좋게 말하면 먹기 좋은 크기이다.
수확한 감자를 농장에서 삶아 봤다. 내 입맛에는 좋지만 남들 입맛에 맞을지 걱정이다. 작은 편이지만 좋게 말하면 먹기 좋은 크기이다.

갈무리 한 감자에 양파즙과 감잎차 등을 팔았다. 감자 주문이 작년보다 적어서 많이 남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골라서 보내고 나니 오히려 모자랐다. 말이 좋아 완판이다. 양파즙도 다 나갔고, 들기름도 워낙 양이 적어 주문보다 모자랐다. 작년 요맘때 판매한 매출액 보다 20퍼센트 정도 감소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봄 판매가 결국 그랬다. 농사에 소질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 써도 나아지지 않는 다면 그게 한계라는 의미 아니겠나. 누구 말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양조장으로 업종을 전환해야 하는 건가. 잘 되는 거 하나 없고, 발에 차이는 호미가 보기 싫었다.

농막에서 박스를 정리하고 있는데 장씨아저씨가 들어오셨다. “날 선선한디 머 허는가” 서울에서허리 수술 받고 지난주에 내려오셨는데 찾아 뵙지도 못했다. 운동하실 겸 등산용 스틱을 짚으며 걸어 오셨단다. “감자는 많이 팔았는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서 못 팔았어요. 나온 게 없어서. 그나마 팔면 뭐해요. 박스비 택배비로 다 나가구 일 할 마음도 안 생기고. 재미도 없어요.” 한참 듣던 아저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자빠졌네. 병원 가 있어보니까 벨 사람 다 있드만. 따까리 열어 놓은 채로 있어도 살려구 발버둥 치드구마.” 따까리? 농약 탈 때 병 뚜껑으로 계량하면서 쓰는 말인데, 아 뚜껑! 머리 다친 환자 두개골 얘기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함 가 봐! 그런 사람들 앞에서 일 하기 싫다는 말이 나오는가.”

아저씨는 언짢은 듯 커피도 안 드시고 일어나셨다. 복잡한 생각으로 따라 나서는데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감자를 삶아 보니 포실포실하여 감촉이 좋고 은은하게 단맛이 나며 껍질까지 맛 있어서 아이들이 매일 삶아 먹겠다고……’ 택배를 받은 분이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메시지 몇 개가 동시에 들어왔다. ‘양파즙이 진하고 달아요’ ‘포장에 신경 써주셔서 감동받았네요’ 시간을 맞춘 듯 쏟아져 들어왔다.

“뭣이 그렇게 띵똥거려싸?” 힘들게 걷던 아저씨가 물으셨다. “이제 택배들 받았나봐요. 좋다고 해주네요 다들.” 아저씨는 끄덕이며 걷다가 잠시 멈추고 농장을 둘러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애썼구마. 이 뜨거운디 예초기질 하느라고.”

아저씨는 다시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가셨다. 나는 그 자리에 조금 더 서서 기도했다. 정말로 이기적인 기도. “아저씨, 내내 건강하셔야 합니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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