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
한국도 불평등, 양극화 등 문제 심각
미련 두지 말고 신자유주의 포기해야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질서에 신물이 난 민심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유시장과 경쟁논리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박종현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의 전문가가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영국이 신자유주의의 원조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번 국민투표의 결과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이 나라가 오일쇼크와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자유시장, 세계화, 규제완화, 민영화, 유연화, 공공부문 축소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것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다.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승자와 패자로 양분되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며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 이번 투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신자유주의가 기세등등하기로는 한국만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시기에 본격 상륙했으니 어느덧 20년이 됐다. 그 사이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수출도 늘렸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고단하고 힘든 사회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소득불평등 4위 등의 지표에서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 보인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증오가 커가고 헬조선이니 N포세대니 자조가 만연해 있다. 나이가 들어도 돈벌이에 내몰려 또 다른 생존 경쟁을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씨가 선친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사과했겠는가.
여기서 놀라운 것은 김대중, 노무현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부정하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어찌된 일인지 신자유주의만은 반대하지 않고 도리어 확대 이행한다는 사실이다. 기업가 출신 지도자는 유권자 또한 잘 살게 해줄 것이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선택한 이 대통령이야 그러려니 해도, 그 후계자인 박 대통령이 한 수 더 떠 신자유주의의 선봉으로 치닫는 것은 어리둥절한 일이다.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개념 말고는 박 대통령이 언급하는 경제 정책 중 규제완화와 노동개혁 외에 따로 떠오르는 게 없다. 둘 다 신자유주의의 대표 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과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기업 요구를 무분별 수용한 규제완화와 무관치 않은데도 “규제는 암덩어리” “원수”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는 섬뜩한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일반해고지침이나 성과연봉제 같은 노동개혁도 말이 개혁이지 결국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눠 못하는 사람은 창피를 주고 임금을 깎고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OECD가 “공공서비스에 성과연봉제가 잘 작동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비판적 보고서를 이미 9년 전에 냈고 세계 유수 기업들이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하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박 대통령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파견법 개정도 달리 보면 적은 돈으로 부리고 고용 보장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정규직 양산 정책일 뿐이다. 한달 전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은 게 바로 그런 논리를 따른 결과였다.
규제완화와 노동개혁 말고도 대학에 시장 논리를 강요하고 의료와 에너지 분야에서 민영화를 의심케 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금도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보았듯 신자유주의는 이제 큰 도전에 직면해있다. 신자유주의 주도 국가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보호 확대를 도모하고 기본소득 논의 또한 활발한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가 이미 폐기 수순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도 벌써 20년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니 해볼 만큼 해본 셈이다.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이라 할 수는 없어도, 해볼 만큼 해본 결과가 양극화와 불평등, 그에 따른 절망의 확산이라면 더 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무리 요지부동의 정부라지만 이제는 유령과 헤어질 때가 됐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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