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제국과 동지적 관계라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할머니들을 일본의 전쟁수행을 돕는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인식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올해 3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부제: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라는 책을 발간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정영환(35)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 교수는 고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국적이 소망을 가로 막았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1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어판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을 신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조선적’(朝鮮籍)이라는 신분을 문제 삼아 입국을 불허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많은 학자와 독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위안부 할머니들도 만나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데 유감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러면서 “역대 정부가 재일동포 입국을 국적변경이나 사상검열 수준에서 막아왔는데 고국을 찾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정 교수의 입국이 좌절되긴 했지만 출판기념회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정 교수가 펴낸 책은 박 교수 저술의 문제점, 위안부 제도와 왜곡된 피해자의 목소리, 한일회담과 근거 없는 보상ㆍ배상론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정 교수는 “박 교수 책의 일본어판에는 한국어판에 없는 주장과 뉘앙스를 달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인의 비판을 피하려는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 독자에게는 일본이 이제까지 식민지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를 안 해왔다는 점을 썼는데 일본판에서는 사실상 사죄를 해왔지만 알기 쉽게 한국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돼있다”며 “사실상 사죄했지만 한국쪽이 몰랐다는 것과 사죄를 안 했다는 얘기는 다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또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일본이 위안부 배상을 추진했고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는 박 교수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도 사료검증으로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측은 징용자에 대해 일본법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별적으로 지불한다고 했지만 위안부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한국 정부가 위안부 개인청구권을 포기했다면 연구사적으로 새로운 주장이고 사실이라면 대발견”이라면서 박 교수가 근거자료를 오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준비과정에 피해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도 1990년대 식민지 책임을 애매하게만 인정했다”며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에 최종적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한일협정 당시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고도 했다.
‘조선적’을 보유한 그는 특별영주권자로 일본법률상 무국적자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재일 한국인에게 식민지이전의 국호인 ‘조선’을 따와 ‘조선적’을 부여했고 1950년부터 국적 표기를 신청하면 ‘한국’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1965년 국교정상화 후 대다수가 한국국적을 취득했지만 일부는 조선적을 유지했다. 현재 3만4,000여명의 재일 한국인이 조선적 보유자로 남아 있다. 정 교수는 “불편함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일본으로 귀화하는 이들도 있지만 통일에 일조하고 싶기 때문에 조선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009년에도 민족문제연구소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입국을 시도했다가 좌절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그는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3년 대법원은 정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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