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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인류를 향한 외침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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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인류를 향한 외침은 '사랑'

입력
2016.07.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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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이 1980년 프롬 사후에 그를 그린 작품. 한 손에는 책, 다른 손에는 사랑을 담은 꽃을 든 그의 발길마다 사랑의 흔적이 남은 모습이다. 글항아리 제공
캐리커처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이 1980년 프롬 사후에 그를 그린 작품. 한 손에는 책, 다른 손에는 사랑을 담은 꽃을 든 그의 발길마다 사랑의 흔적이 남은 모습이다. 글항아리 제공

에리히 프롬 평전

로런스 프리드먼 지음ㆍ김비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88쪽ㆍ2만8,000원

들불처럼 번지는 글이 있다. 주로 시대의 결핍과 갈구를 예리하게 포착한 경우다. 한 번 언중의 마음에 무섭게 스민 이런 글은 학계나 평단에서 ‘완성도’ 논란이 나와도, 끝없는 파문을 그려나간다.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이런 통찰력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한 소위 대중지식인의 아이콘이다. 전쟁 와중에 5쇄를 찍어낸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는 순식간에 고전 반열에 올랐고, ‘사랑의 기술’(1956)은 1990년대까지 2,500만부 이상 팔리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학계의 냉대가 끝없이 따랐다.

그의 학문과 생애를 다룬 ‘에리히 프롬 평전’이 번역 출간됐다. 저자 로런스 프리드먼은 기고가이자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사, 문화사, 지성사 등을 연구한 교수다. 프리드먼은 방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 인터뷰 등을 통해 프롬의 생애를 복기했다. 에리히 프롬 기록 보관소 자료 연구에만 12년을 들였고 프롬을 알았던 동료, 지정 집행자, 비서, 요리사까지 만난 노작이다. 그의 저작과 생애를 낱낱의 장면으로 이해했던 독자들에겐 반가운 책이다.

프롬은 흔히 사회심리학의 개척자, 정신분석가, 철학자 등으로 기억되지만,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려면 한 마디로는 부족하다. 히틀러 나치의 발흥을 지켜본 독일 출신 유대인, 유대교 전통의 계승자이자 탈무드 학자를 꿈꿨던 소년, 환자와 자신을 치유하는 임상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남자, 반전반핵 평화운동가, ‘미국화’와 대중 저술을 꺼린 유럽지식인들과 다른 길을 간 베스트셀러 작가, 고위층의 정치 조언자 등. 저자는 숱한 삶을 살아낸 그의 다양한 면모를 세심하게 정리했다.

프롬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근심 많은 아버지와 자주 우울해하는 어머니 사이의 외아들”로 말하곤 했다. 안절부절하며 자신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의 태도로 그는 가족 속에서 소외를 느끼곤 했고, 한편으론 ‘탈무드’ 학자, 랍비, 윤리학자였던 친척들의 영향으로 유대교적 전통, 히브리어 성경, 예언자들의 글, 세계 평화에 대한 비전에 매료됐다. 김나지움 재학 중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의 풍경은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셈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는 “당파적이거나 객관성이 결여된 것들”은 피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구호의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프롬이 이때부터 “도그마를 불신하고, 정설에 등돌리는 ‘사유하는 야인’이 됐다”고 봤다.

탈무드 학자를 꿈꾸는 사회학도였지만 첫 아내와 만남을 계기로 정신분석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학파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마르크스주의 사회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게 된다. 프롬은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프롬은 독점자본주의 사회가 기회 불평등으로 자아를 위협한다고 지적하면서, 이 빈곤한 자아의 무기력과 엄격한 가부장제가 그저 “상위 권력에 스스로 복종하길 바라며 자신을 상실하는 인간”을 만들고, 권위주의에 흥을 돋운다고 봤다. 즉 혁명가는 사라지고, 지배자가 말하는 “종족, 국민, 통치의 영광”에 운명을 맡기려는 마조히스트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롬은 “리비도적 에너지가 인간 본성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하는 프로이트의 대전제를 저버려야겠다”고 결심했고, 동료들은 그를 이단으로 간주했다. 역설적인 것은 이 무렵은 프로이트조차도 자신을 향한 비판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특히 아도르노는 프롬의 연구를 “위협”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경멸했다. 프롬도 아도르노에게 “신념도 없고 할 말도 없는 우쭐하기만 한 헛소리 창시자”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도 소개된다.

결국 프롬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퇴출됐지만 저자는 프롬의 사유가 사실상 프로이트의 확장판이었다고 봤다. “프로이트의 기술은 가부장제 중산층 사회의 기이한 특질을 논할 때 유효하다”는 게 프롬의 견해였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프로이트와 프롬의 연구 모두를 “히틀러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권위주의에 의해 뿌리 뽑혔던 두 명의 성숙한 유럽인의 생각과 영혼의 삶이 어우러진 춤사위”로 정의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간 사회의 모습에서 “야만, 대량학살을 도려낼 첨예한 칼날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사랑을 해결책이라고 본 프롬에 비해 프로이트는 다소 희망적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된 프롬은 미국, 멕시코 등에 정착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학제를 넘나드는 중대한 이슈와 인간적 고민을 다뤘고, 유작 ‘소유냐 존재냐’(1976)에 이르기까지 숱한 저작을 쏟아내 한결같이 사랑 받았다. 유럽 독자들은 특히 증오, 폭력의 굴레에 빠진 불능의 시대를 우려한 지식인의 등장을 반겼다. 순응보다 자각을, 소유보다 절제와 집중을, 증오보다 사랑과 내면의 성찰을 강조한 저술이 큰 공감을 샀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특유의 예언자적 글쓰기와, 이분법적 기술 방식 등으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갔지만 여기엔 늘 학계와 평단의 지적이 따랐다. 인류학자들은 인격 형성에 특정한 과정이 있다는 그의 전제를 불편해했고, 역사학자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더 고립된 현대적 개인을 만들었다는 프롬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했다. 평단은 갑자기 ‘사랑’을 논하며 낙관적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을 허술하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이런 지적들이 일정 정도는 사실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프롬의 글이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든 뒤 갑작스런 활기로 끝나는” 이유가 그가 유토피아적 인본주의자였고 구약 유대인의 예언적 전통을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전은 프롬이 전 생애를 통해 “자아의 회복”과 “사랑”을 호소한 학문적 궤적을 여러 각도에서 복기하며 지적 포만감을 준다. 특히 그가 영향을 주고 영향 받은 학자들의 면면과 이들 사이의 논쟁도 풍성하게 펼쳐 보여 흥미롭다. 다만 군데군데 거친 번역이 눈에 띄는 점은 아쉽다.

극단으로 치닫는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린 그의 책은 유럽 전역과 세계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명성을 얻은 프롬은 핵 재앙의 위협이 현실화한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존 F 케네디 등과 접촉하며 전쟁 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활약은 동료 학자들의 지적을 무색하게 하는 동시에 시대가 요구하는 학자의 역할을 재고하게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유냐 존재냐’를 뛰어난 종교서적으로, 프롬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렀다. 평생 스스로의 기준을 개척해간 프롬의 삶과 글은 우리에게 간곡하게 묻는다. 순응할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두 가지 선택은, 자유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속박과 순응에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만의 개성에 뿌리를 내린 적극적인 자유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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