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반군 간 휴전 협정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로드리고 론도뇨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이로써 52년간 계속된 적대 관계가 끝나게 됐다. 이날 협정식에는 양측의 협상을 중재해 온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협정에 따라 FARC는 6개월 이내에 모든 무기를 유엔 감시단에 넘겨줘야 한다. 또 콜롬비아 정부는 7,000명에 달하는 FARC 조직원들에 대해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무려 52년에 걸친 콜롬비아 정부-반군 간 갈등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양측이 이른 시일 내에 포괄적 평화협상 최종합의문에 서명하면 휴전이 발효된다.
휴전 합의 소식에 미국도 “52년 갈등을 끝낼 중요한 과정”이라며 환영했다. 수잔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역사적 휴전 합의”라고 평가라면서 “콜롬비아 국민이 정당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 그들의 옆에 서 있겠다”며 반겼다. 미국 정부는 내전 종식에 따른 재건 비용으로 4억 5,000만 달러(5,360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또 이와 별도로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이 공동으로 진행 중인 지뢰 제거 작업에도 3,300만 달러(390억 원)를 지원한다.
콜롬비아 정부와 FARC는 ▦FARC를 정당으로 변환시키는 방안 ▦상호 휴전 ▦내전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 등을 놓고 2012년 11월부터 4년째 평화 협상을 벌여왔다.
반군 무장 해제 과정 최대 난제
하지만 양쪽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쌍방 정전 합의에 따라 실질적인 무장 해제가 이뤄져야 한다. 먼저, FARC 반군 7,000명은 최종 평화협상 타결 직후부터 6개월 이내에 22곳에 마련된 평화지대에 가서 유엔에 무기를 반납해야 한다. 이때 정부군은 반군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문제는 무장 해제 과정에서 평화 협정에 반대하는 일부 정부군과 우익 민병대가 무기를 버린 반군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평화 협정은 일시에 물거품이 된다.
이번 협정을 이끌어 낸 친미ㆍ보수우파 성향의 산토스 대통령이 2018년 8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경우, 산토스 정권을 이을 차기 정권이 평화 협정을 계속 준수할지 여부도 관건이다. 이에 양측은 평화 협정을 ‘특별 협정’으로 규정해 그 내용을 콜롬비아 헌법에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평화협정 내용의 이행을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일부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최종 평화협정을 어떻게 비준할지 여부도 남은 숙제다. 산토스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평화협정을 승인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FARC는 제헌의회를 소집해 의회에서 승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투표 승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경우 국민투표에서 국민 동의를 얻을지가 또 다른 변수다. 현재까지는 평화 협정에 대한 국민 여론이 찬성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10개 도시 7,33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58%가 ‘평화 건설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변했다. 부정적인 답변은 24%였다. 하지만, 국민투표 결과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힘들다. 52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희생자 가족과 보수층 사이에서는 반군 테러나 납치 활동에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별전범재판소 구성을 놓고 양측이 첨예하게 맞설 가능성이 높다. 이 재판소에서는 내전 과정에서 불거진 양측의 전쟁 범죄를 다루게 되는데, 양측이 공감하는 중립적인 재판관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양측은 FARC 대원 중 14~18세 청소년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면하기로 합의했다.
이밖에 콜롬비아 정부로서는 제2 반군인 민족해방군(ELN)도 골칫덩이다. FARC보다 더 과격한 성향으로 평가받는 ELN이 FARC의 빈자리를 노려 세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지난 3월부터 ELN과 협상 중이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마약 조직까지 개입된 52년 내전
콜롬비아 내전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콜롬비아는 뿌리 깊은 빈부 격차와 불평등, 가난 등이 이어졌고 일부 좌파 세력들이 “가난한 계층의 권리를 수호하고 공산주의를 통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게릴라 조직 FARC를 창설했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가 “질서와 안정을 지키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FARC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내전이 본격화됐다. 여기에 우파 민병대, 심지어 마약 조직까지 내전에 가세하면서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며 50년이 넘게 갈등이 이어졌다. 실제로 좌익 유격대와 우익 민병대는 마약 밀매ㆍ테러리즘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양측 모두 분쟁 과정에서 많은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
1990년대에는 정부군 세력이 축소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우익 민병대 조직이 활성화됐다. 특히 1996년 민병대 지도자 중 한 명인 카를로스 카스타노는 “좌익 반군 단체 지지자로 의심된다”며 민간인들까지 무차별 공격,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반대로 2002년에는 FARC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조직원이 2만 명을 넘어섰고 콜롬비아 국토의 3분의 1을 실효지배하기도 했다.
내전의 상처는 깊었다. 콜롬비아 국립역사기념센터 연구에 따르면, 52년 동안 콜롬비아 인구 4,900만 명 가운데 22만여 명이 사망하고 4만 5,000여 명이 실종됐으며, 약 660만 명이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민간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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