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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리더가 이상주의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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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리더가 이상주의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

입력
2016.07.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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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26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 시장 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포토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26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 시장 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1979년 3월28일 새벽,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해리스버그 인근 서스쿼해나 강 한복판 스리마일 섬에서 원자력 발전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사소한 고장과 직원 실수가 겹치면서 원자로 주변에 냉각수가 공급되지 못한 것이다. 원자로가 녹기 시작했고, 인근 주민 10만여명이 허겁지겁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1m 두께 격납 용기 덕분에 외부 방사선 피폭량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원전의 안전성 논란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미국 연방정부는 원전 사고를 막기 위한 총체적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그 책임자가 찰스 페로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였다. 수 년간의 학제적 연구 끝에 페로 교수가 내놓은 결론은 간단했다. 현대 문명의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아무리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도 유사한 사고를 100%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는 이후 ‘정상사고(Normal Accident) 이론’으로 정교화됐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일선에서 은퇴한 그에게 최근 한국에서 잇따르는 증오ㆍ여성혐오 범죄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다. 며칠 후 응답 메일이 왔다. ‘내 전공분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분야’라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넓고 경륜 많은 노학자는 이런 짧은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런 사고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각각 나라들의 대응방식이 크게 다를 뿐이다.” 한국 사람들은 온갖 기괴한 범죄가 ‘지금,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처럼 걱정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완전히 뿌리 뽑겠다’고 극단적으로 대응하는 게 오히려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인 듯 했다.

급진ㆍ이상주의적 대응의 부작용은 해당 국가나 조직의 지도자가 현실의 굴곡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 더욱 커진다. 최근 전해들은 한 대기업 총수의 ‘의전 간소화’가 대표 사례인 듯싶다. 선대와 달리 미국에서 MBA 교육을 받은 이 분은 경영 전면에 나선 뒤 해외출장에 공식 수행원을 두지 않는다. 해외 행사장에도 예고 없이 혼자 손가방 들고 나타나는 걸 즐긴다. 공항에도 직원 대신 영어 구사가 가능한 운전자만 나오면 된다고 한다.

직원들은 정말 편해졌을까. 아니다. 들키지 않고 미행하며 총수를 경호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제3세계 국가에서 영어에 능통한데 운전 기사로 만족하고 지내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신문은 지난해 3월 이메일 파문을 특종 보도, 클린턴 전 장관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였다. 그런데도 올해 1월 장문의 사설을 통해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참신하지는 않지만, 그의 정책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다는 이유였다. 무상 등록금, 월가 대형은행 폐쇄,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무슬림 추방 등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나 도널드 트럼프 정책은 현실에서는 결코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수많은 기득권이 얽힌 현실에서도 통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그래서 타협도 하고 양보도 하고 인생의 쓴 맛도 본 클린턴 전 장관이야말로 미국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워싱턴에는 큰 꿈을 꾸는 한국 정치인들이 많이 오간다. 대부분 훌륭한 분들이지만, 개중에는 깜냥도 안되면서 한국에 돌아가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하는 이들도 있다. 양극화 문제 해결이 시급하지만, 그 해법이 포퓰리즘 구호가 아니라는 것쯤은 ‘브렉시트’로 더욱 확실해졌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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