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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훼손된 지문뿐.. 161번 찍어 유영철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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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훼손된 지문뿐.. 161번 찍어 유영철 잡다

입력
2016.07.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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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감식 베테랑 김희숙 CSI요원

34년 과학수사 외길 독보적 존재

부패한 손가락 닦으며 지문 확보

영화 ‘추격자’ 여형사 모델로

“치밀해야 하는 감식, 여성 도전 기다려”

20년 베테랑 과학수사요원 김희숙 경위가 29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분석실에서 지문 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20년 베테랑 과학수사요원 김희숙 경위가 29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분석실에서 지문 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숨어 있는 지문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았을 때의 쾌감과 자부심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 죽음의 현장에서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각오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찰 과학수사대(CSI)다. 이 중 지문감식수사 전문가 김희숙(54)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현장감식팀 경위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내 과학수사 분야의 독보적 존재다. 우리나라의 첫 여성 과학수사요원이기도 하다.

김 경위는 1982년 일반 행정관으로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증거분석계에 입사한 뒤 34년 간 지문감식 외길을 걸었다. 2000년엔 순경으로 특채 돼 지금껏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문감식 수사의 베테랑이다. 수백 건의 사건현장에서 확보한 지문으로 최단 시간 내에 범인을 특정해 사건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감정업무 표준업무 처리지침을 만든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여경으로는 유일하게 경찰 최고 영예인 ‘전문수사관 마스터’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여성 현장감식 요원은 전무했다. ‘여자가 시신을 보고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동료도 많았다. 그럴수록 휴식 시간을 쪼개가며 남들보다 몇 배 더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했다. 동료들이 퇴근한 뒤에도 김 경위는 관련 전문 서적과 자료에 파고들며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다. 2004년 검거된 유영철을 검찰에 송치하기 위해서 열흘 안에 살해된 여성들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했다. 그러나 유영철이 피해 여성들의 지문을 흉기로 도려낸 탓에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때 김 경위는 토막 난 손목의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부패액을 닦아가며 지문을 찍어댔다. 지문을 찍고 다시 닦기를 161차례, 기어이 제대로 된 쪽지문(부분지문)을 얻어냈고 피해자의 신원을 밝힐 수 있었다. 김 경위는 이 일로 영화 ‘추격자’에 등장하는 현장 여형사의 모델이 됐다.

김 경위의 눈부신 성과 뒤에는 가족의 도움이 있었다. 사흘에 한번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내와 엄마를 위해 남편은 요리학원까지 다니며 외조에 나섰고, 두 아들도 집안일을 척척 해냈다. 김 경위는 30일 “잘 챙기지 못해도 항상 이해해 주는 가족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예전보다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경 감식요원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업무 특성상 눈에 보이지 않는 지문을 채취하려면 화학약품을 가까이 해야 해 임신이라도 하면 다른 보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은 탓이다. 현재 서울경찰청 소속 현장 감식팀 250여명 중 여경은 5명뿐이다. 그래서 현장 활동과 함께 각종 강의를 병행하며 감식수사의 보람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치밀하게 증거를 채취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는 지문감식 수사는 여성의 뛰어난 감각이 빛을 발하는 분야입니다. 과학수사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여경들의 도전을 기다리겠습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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